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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치카렐리(1.18)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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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 크리스티나 치카렐리 (Christina Ciccarelli)
성인 기본정보
축일 1월 18일
신분 동정녀, 수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543년

  •    복녀 크리스티나 치카렐리는 1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Abruzzo) 지방 라퀼라(L’Aquila)의 루콜리(Lucoli)에서 치카렐리 귀족 가문의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티아(Matthi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그녀는 어려서부터 기도와 참회 생활에 관심이 많았고, 집에 있는 피에타 성상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1492년 라퀼라에서 작은 형제회 빈센조(Vincenzo)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수도 생활에 대한 성소를 확고히 한 마티아 치카렐리는 영적 지도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라퀼라의 성 아우구스티노회 산타 루치아(Santa Lucia)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명으로 크리스티나를 선택한 그녀는 겸손과 덕행의 모범이 되었고, 수도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루초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 관대한 나눔과 사랑을 베푼 것으로 유명했다.

       수녀원장의 직분을 여러 차례 역임한 복녀 크리스티나 (마티아) 치카렐리는 오랜 시간 기도하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지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또한 매우 엄격한 보속의 생활을 했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한 번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성체를 모신 성광이 그녀의 가슴에 빛을 발하고 그녀가 땅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복녀 크리스티나 치카렐리는 오랜 투병 끝에 1543년 1월 18일 선종해 산타 루치아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가 선종했을 때 라퀼라의 어린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온 도시에 전하러 다녔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과 전구를 통한 기적이 확인되면서 1841년 1월 15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복이 승인되었다. 그녀의 유해는 1908년 키에티(Chieti) 인근 산타미코(Sant’Amico) 수도원으로 옮겨 모셨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18일 목록에 성 아우구스티노회의 복녀 크리스티나 (마티아) 치카렐리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라퀼라에서 그녀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