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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1세(1.16)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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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마르첼로 1세 (Marcellus I)
성인 기본정보
축일 1월 16일
신분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08/9년?

  •    304년에 순교한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 4월 26일) 밑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지도자적 임무를 수행한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가 308년에 교황좌를 계승함으로써 비로소 약 3년 반 동안 비어 있던 베드로(Petrus)의 주교좌가 주인을 맞게 되었다. 자료에 따라 1년 6개월 또는 채 8개월이 안 되는 재위 기간 중 그는 혼란과 분열에 빠진 교회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박해로 인해 집회 장소와 묘지가 압수되고, 배교자들이 정해진 속죄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다시 신자 생활에 참여하길 요구하는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교회를 각각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는 25개의 본당으로 재조직하고, 본당 사제를 중심으로 예비신자의 세례를 준비시키고 배교자들에게 규정된 속죄 행위를 실행하도록 했다. 또 새 주교를 서품하고,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 반대편인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새 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회를 재정비하려는 그의 노력은 배교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큰 혼란과 장벽에 부딪혔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쓴 비문에 의하면, 그는 배교자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속죄 행위를 요구한 엄격주의자였다. 그로 인해 헤라클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배교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유혈 충돌로까지 번졌다. 결국 막센티우스 황제는 배교자들의 고발에 따라 성 마르첼루스 교황을 체포해서 평화의 파괴자란 죄목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유배지에서 얼마 뒤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박해 기간에 징수되지 않았던 개인 묘지인 성녀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교황의 최후에 대한 이런 내용은 “리베리우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순교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를 기록한 5세기의 “마르첼루스의 수난”(Passio Marcelli)과 “연대 교황표”는 다른 전승을 전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 마르첼루스 교황은 교회를 재조직하고 주교 직분을 지키면서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막센티우스 황제는 루치나(Lucina)라는 후원자가 자신의 집을 봉헌해 세운 ‘마르첼루스 성당’을 마구간으로 개조하고, 교황을 그곳에서 마부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교황은 신앙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참고자료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마르첼로 1세,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66-67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마르첼로 1세',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346-23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