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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파브르(8.2)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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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베드로 파브르 (Peter Faber)
성인 기본정보
축일 8월 2일
신분 신부
활동지역
활동연도 1506–1546년

  •    성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er)는 1506년 4월 13일 사부아(Savoie, 프랑스 동남부에서 이탈리아 서북부에 이르는 지방의 옛 이름) 지방의 빌라레(Villaret)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중에는 아버지의 양들을 돌보고 주일에는 성당에서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는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톤(Thones)에서 한 사제의 보살핌을 받다가 후에 인근 학교에 들어갔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는 파리(Paris)로 갈 결심을 하고 부모의 동의를 얻어 1525년 파리 대학에 입학하였다. 여기서 그는 학업에 대한 소망을 이룰 수 있었고, 뜻밖에도 자신의 참된 성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파리의 기숙사에서 후에 성인이 된 나바라(Navarra) 출신의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 12월 3일)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아꼈고, 1530년 같은 날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이 대학에서 후에 예수회를 설립한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나 그의 첫 번째 동료가 되었다. 성 이냐시오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사제직에 대한 성소를 확인한 그는 1534년 5월 30일 사제품을 받고, 같은 해 8월 15일 몽마르트르(Montmartre) 수도원의 순교자 성당에서 성 이냐시오와 그의 초기 여섯 동료 중 하나로 개인적인 서원을 했다. 그들은 가난과 정결 그리고 학업이 끝나는 대로 예루살렘에 가서 이교들의 회개를 위한 일생을 봉헌한다는 서원을 하였다. 이때 성 베드로 파브르는 사제로서 동료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였다.

       1536년 성 이냐시오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에스파냐로 귀국하였고, 자신을 대신해 성 베드로 파브르에게 동료들을 이끌도록 했다. 성 베드로 파브르는 1536년 11월 15일 동료들과 함께 파리를 떠나 이듬해 1월 베네치아(Venezia)에서 성 이냐시오와 재회하였다. 그들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교황의 특별한 축복을 받기 위해 성 베드로 파브르를 로마에 파견하였다. 하지만 교황의 걱정대로 터키인들의 방해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은 1537년 6월 24일 베네치아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해 겨울 성 베드로 파브르는 성 이냐시오와 동행해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리고 이때 로마 근교의 한 성당에서 성 이냐시오는 환시를 체험했고, 이는 예수회 설립의 출발점이 되었다.

       성 베드로 파브르는 예수회의 초기 동료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깊은 지식과 온화한 성덕으로 존경을 받았고 많은 영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로마에서 사피엔티아(Sapientia)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던 그는 1539년 교황의 명으로 파르마(Parma)로 파견되어 사제들의 양성에 힘썼다. 이어 1540년 여름에는 다시 독일의 보름스(Worms)에서 개최되고 있던 종교회의에 파견되었다. 당시 보름스에는 루터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 베드로 파브르는 설교와 토론을 통해 가톨릭의 입장을 수호하고 독일 교회가 가톨릭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독일의 여러 도시를 돌며 급속히 성장하는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며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의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는 교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직자들의 신앙과 생활이 쇄신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성직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영신수련을 지도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스스로 복음적 가난과 영성적 삶의 실천을 통해 많은 이들을 가톨릭 신앙으로 되돌아오도록 하였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성소의 씨앗을 심어주어 그들 스스로 성소를 발견하도록 인도하였다.

       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1544년 8월 독일을 떠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로 파견되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과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그는 예수회원으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에스파냐의 주요 도시를 도보로 여행하며 신앙의 열정과 성소를 불러일으키고 육성하였다. 또한 트리엔트(Trent) 공의회 중에는 교황의 신학자문으로도 임명되었다. 하지만 과로와 고된 여행으로 인해 극도로 쇠약해진 그는 1546년 7월 17일 로마에 도착해 지병이던 열병으로 고생하다가 8월 1일 성 이냐시오의 품에서 40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사람들로부터 이미 성인처럼 존경받던 그는 1872년 9월 5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2013년 12월 17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기적 심사와 시성식 없이 ‘균등한 시성’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는데, 이는 교회 안에서 이미 성인처럼 공경해온 이들을 시성하는 특별 규정으로 지속적인 공경을 교황이 공식적으로 확인함으로써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 메리 퍼셀 저, 김치헌 · 김학준 역, 베드로 파브르 성인 - 예수회의 첫 사제, 이냐시오의 첫 동료, 서울(가톨릭출판사), 2017년.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164-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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