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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711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5-06

[가톨릭 교리]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바오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

 

예전에 튀르키예와 그리스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 코스는 당연히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였고, 사도 바오로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순례하는 내내 사도 바오로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 그분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묵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역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분입니다. 신약성경 전체 27권 가운데서 흔히 바오로 서간이라 부르는 서간은 13권으로, 신약성경 거의 절반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입니다. 신약성경 중 복음서 4권과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묵시록을 제외하면 21권이 서간인데, 그중 바오로 서간은 거의 3분의 2입니다. 물론 13권 모두 바오로 사도가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닙니다. 대략 13권 중 7권이 직접 저술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굳이 말한다면 ‘그리스도 이외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 이외엔 어떤 것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분이었습니다. 본래 유다인 박해자이자 바리사이파였는데,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로, 더 나아가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목숨을 바친 순교자로 바오로의 삶은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리사이로서 정통 유다교에 충실했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까지 한 바오로가, 유다교 신념에 그토록 깊이 빠져있던 인물이 그렇게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이방인을 멸시하는 유다인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던 바리사이가 어떻게 이방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요? 

 

바오로는 이 모든 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하느님의 선택과 은총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리 1,21 공동번역)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철저하게 자기 삶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살았던 분이 사도 바오로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모든 것을 ‘거저’ 받았음을 강조합니다.(2코린 3,1-4,6 참조) 그리고 복음이라는 엄청난 보물에 비해 자신은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2코린 4,7-5,10 참조)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밝히는 모습은 구약성경에서도 여러 번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탈출 4,10) 예언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자신의 말솜씨가 서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모세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주시는 소명은 타고난 자질보다 무능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판관으로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은 자신이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한 가문 출신임을 고백했고(판관 6,15 참조), 아모스는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었으며(아모 7,14 참조), 예레미야는 자신이 너무 어리다고 변명했고(예레 1,6 참조), 이사야는 자기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저항했으며(이사 6,5 참조),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의문을 제기했으며(루카 1,34 참조), 주님께 떠나달라고 간청했던 베드로는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이라고(루카 5,8 참조) 고백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자신은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했기에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 9,5). 사흘 동안 보지 못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극적인 체험 후 사울은 사도들과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을 선포합니다. 이후 1차 선교여행 때부터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사도 13,9). 사도 바오로라는 이름은 후대에 그리스도교 최초의 신학자, 이방인들의 사도, 열정적인 선교자, 불굴의 증거자로 기억됩니다.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 하느님의 훌륭한 도구로 바뀌는 결정적인 요인은 당연히 ‘은총’입니다. 그 은총은 인간이 지닌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넘치도록 주어졌습니다. 바오로는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은 자신을 가리켜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1코린 15,10)라고 선언했습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Non mea, sed Tua!)

 

열정적인 주님의 사도인 바오로를 비롯해 우리가 성인으로 기리는 분들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보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였고, 그대로 믿었던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결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언제나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도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non mea, sed Tua)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기리는 분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에게만 어떤 특별한 능력과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나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마태 6,33)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12명의 사도들은 물론이고 사도 바오로 역시 예수님을 닮고자 노력했고, 예수님처럼 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삶이란 만일 어딘가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그곳에 가고, 한 사람도 없으면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그곳에 가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살면 가능합니다. 그런 사람은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것도 그 밖에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성모님의 군단, 2026년 4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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