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교리 상식: 순교는 조선시대나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요? 아직도 교회가 순교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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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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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순교는 조선시대나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요? 아직도 교회가 순교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전에 어느 본당을 찾아갈 일이 있었습니다. 교우들이 없는 평일 낮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자매님 한 분이 남녀 화장실 전체를 정말 정성껏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부탁드리려고 고용한 분이신가 싶어서, 보수를 드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해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 주임 신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청소를 위해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본당 교우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봉사하고 싶다며 오래전부터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매번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그토록 정성을 다하신다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103위 한국 순교 성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순교하기는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순교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순교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신앙의 마음가짐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서 공인된 이후, 목숨을 내어놓는 방식의 순교가 흔하지 않게 되자, 그레고리오 1세 교황님은 세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순교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적색 순교, 백색 순교, 녹색 순교가 그것입니다. 적색 순교는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순교를 의미합니다. 교황님은 여기에 두 가지 종류의 순교를 더하신 것입니다. 이는 피를 흘리지 않더라도 순교의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식별의 결과입니다.
예로니모 성인께서도 이에 대해 설명하신 바 있는데, 백색 순교는 “엄격한 고행을 통해 순교의 정신을 따르려고 했던 사막의 은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속을 등지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고자 애쓰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받는 멸시와 고통을 순교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청빈, 정결, 순명’을 서원하고, 세속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삶을 미리 살기 위해 애쓰는 수도자들이 백색 순교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녹색 순교가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녹색 순교에 대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등지는 것은 아니지만, 참회의 의미를 담은 노동이나 단식 등을 통해 욕망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녹색 순교의 개념은 의미심장합니다. 불의한 것은 견뎌도 불편한 것은 견디지 못하고, 많은 것을 배려가 아니라 민원으로 해결하려는 세속적인 흐름이 우리를 휘감습니다. 이러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실천하는 ‘역류의 삶’을 살자는 호소가 ‘녹색 순교’ 안에 담겨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더러운 화장실에 불편을 호소하고 민원을 제기할 때, 아무도 없는 시간에 몰래 나타나 정성껏 화장실 청소를 하던 교우분을 떠올리며, 이 시대의 순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히려 이 시대는 더 많은 순교자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닐까요?
[2024년 9월 15일(나해) 연중 제24주일 서울주보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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