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전
굿뉴스 통합검색
닫기 X
최근 검색어 내역이 없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소록 검색
로그인을 해주세요.
로그인
성경
성경쓰기
가톨릭 뉴스
소리광장
가톨릭 성인
성지/사적지
가톨릭 성가
시편성가
매일미사
성무일도
성무예절서
기도문
전국/해외한인 본당
MY 성당
생활성가
가정기도 길잡이
가톨릭 교리서
교리서 요약편
바티칸공의회문헌
교회 법전
7성사
가톨릭 사전
전국주보
본당정보
자료실
게시판
가톨릭 갤러리
갤러리1898
가톨릭 주소록
클럽
Cpbc라디오
한국가톨릭대사전(NEW)
한국가톨릭대사전(OLD)
전례사전
용어사전
천주교 용어자료집
대사전(NEW)
대사전(OLD)
전례사전
용어사전
천주교 용어자료집
모든 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OLD)
전례사전
용어사전
천주교 용어자료집
검색
가톨릭대사전
가르멜회
한자
~會
라틴어
Ordo Carmelitarum
영어
Order of Our Lady of Mountain Carmel
글자크기
계율이 엄격한 관상(觀想)수도회. 가르멜은 하느님이
인간
들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산의 이름이다. 이
수도회
역사
의 뿌리는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
(1열왕 17-19장)까지 소급한다.
예언자
엘리야도 이 산에서 늘
기도
를 올렸기 때문이다. 가르멜
수도회
는 특별한 창설자가 없다. 가르멜산에
은수자
(隱修者)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수도회
창설의 시작이었다. ‘은수자의 골짜기’에는 570년경에 벌써
수도원
이 세워졌다고 피아첸자(Piacenza)의 한
순례
자는 기술하였다. 가르멜
수도회
는 구약을 거쳐 신약에 이르면서
성서
를 토대로
하느님의 말씀
을
수도회
삶의 바탕으로 삼았다.
1205년부터 1210년까지
예루살렘
의 초대
주교
였던 성
알베르토
(St. Albertus)에 의해 성 브로카르도(St. Brocardus)
수사
에게
공동체
삶을 통한
은수자
적인
수도회
의 첫 규칙서가 주어졌다. 이 규칙서는 1247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탁발(托鉢)수도회로 인준되었다. 가르멜산에서 주어진 이 첫
회칙
(會則)은 이미 체험되어 온
은수자
적인 삶과 정신에 따라 수정과 정리를 가한 것이다.
예언자
적이며 관상적인 엘리야는 지금도 가르멜
수도회
정신과 삶을 이끄는 교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십자군
의 패배로 13세기에 새로 일어난 탁발교단의 형식에 순응하여 가르멜
수도회
도 한때 규율이 해이되고 쇠퇴해 갔는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
의 성
요한
에 의해 초기 가르멜의 정신으로 중대한
개혁
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개혁
된
수도회
를 ‘선족(跣足, 맨발) 가르멜회’(라틴어로는 Ordo Carmelitarum Discalceatorum, 영어로는 The Discalced [Barefooted] Carmelites)라고 하며, 현재 한국에 있는 가르멜
수도회
는 여기에 속한다.
가르멜
수도회
의 순수 관상의 정신은 하느님과 직접적이고 내적인 삶의 체험을 무엇보다
선행
시키며 중요하게 본다.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의
수도회
’라는 명칭이 말하고 있듯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영성적 전통은 가르멜의 소명이
성서
적이고
성모
신심
적인 성격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수도생활
자체를
성모
님께 맡기고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신비
를 생활화하는데 그 소명을 두고 있다.
가르멜수녀회(Carmelitae, Carmelites Sisters) : 이
수녀
회는 13세기부터
존재
하였으나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인준에 의해 정식 설립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Our Lady of the Angels'
수녀
원이 그 최초이다. 엄격한 봉쇄의 규율 아래 끊임 없이
기도
하고
복음
의 정신에 따라 자신을 포기하며,
사도직
을 도모하고
교회
전례
와 하루 7회의
성무일도
, 두
시간
의
묵상
기도 등으로
수도생활
에 전심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심원한 영성생활을 통해 깊은
신비
적 체험으로
교회
의
생명
자체 안에 침투해 갔으며 모든 힘을
교회
봉사
에 기울이고자 가르멜을
개혁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녀
들의
서원
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서원
하는 그 순간부터
교회
를 위하고 이웃을 위한 도구가 된다.
가르멜
제3회
(Third Order of Carmel) : 가르멜
재속회
(在俗會)라고도 하는
제3회
는
그리스도교
신자
로서 다양한 의무를
교회
와
사회
안에서 완수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르멜 3회는 본회의 도움을 받아 데레사적 가르멜의 영성과 지도 안에서
그리스도교
적 삶을 영위하며,
세속
에서
복음
적
완덕
(完德)을
지향
하는
평신도
들의 모임으로, 완전히 가르멜
수족
(修族)에 속한다. 가르멜 재속 3회는 특히
형제회
로서 가르멜적 이상에 일치된 생활을 하고, 영성적으로 고귀한 도움을 보장하며 제 1회에 대한 아름다운 관계를 가꾸어 나간다. 6개월 정도의 예비과정을 거쳐 입회할 수 있으며, 입회 후 1년 반이다 2년이 지난 다음
서약
및 착복을 할 수 있고, 그 뒤 3년이 지난 다음 허원을 하게 된다.
한국 진출 : 1939년
프랑스
의 두
수녀
가 제1진으로 내한하여 1940년 4월 서울 혜화동의 작은 집에서
수도생활
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들은 멕틸드, 마들렌 두
수녀
였으며, 1940년 5월에 앙리에트
수녀
등 3명이 도착, 그 곳에서 조촐한 가르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최소한의 경비로 1941년 7월
수녀
원 건물을 낙성하였다. 한국 진출이 일제 말기였기 때문에 일본 경찰의 감시와 조사는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었고
수녀
들의 생활난은 1945년 광복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1946년에는 그 동안 입회를 못하고 기다리고 있던 10여명의 지원자가 속속 입회하였다.
1950년 3월 5일, 이들은 창립 10주년을
기념
하면서 확장계획을 세우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얼마 후 북한의 남침을 당하게 되자
수도원
의
희생
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날부터의 상처 많은 기록은 이북으로 납치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마들렌
수녀
의 수기 ≪귀양의
애가
≫에
자세
히 씌어 있다. 가르멜
수녀
회는 1953년 10월 부산 피난생활을 마치고 서울 혜화동
수도원
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1954년 1월에는 그 동안 북한에서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본국에 가서 쉬고 있던 앙리에트
수녀
와 마들렌
수녀
를 맞이하였다. 그들은 다시 한국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자 서울에 왔다. 가르멜
수녀
원은 그 뒤 발전을 계속하여 서울 수유동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겼으며, 부산?대구?대전,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등에도
수녀
원을 설치하게 되었다.
가르멜 남자
수도회
: 가르멜 남자
수도회
의 한국 진출은 1974년 9월 8일 서울 삼선동에서
수사
들의 공동생활을 시작한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창설 멤버는
이탈리아
베니스
관구
소속의
요아킴
귀초(Joachim Guizzo)
신부
와 한국인 박병해, 정대식
신부
, 그리고 또 1명의
수사
였다. 한국 가르멜수도원은 진출 2년 후인 1976년 2월 인천시 북부 계산동에 대지 7,200평을 구입하여
수도원
신축공사에 착공, 그해 12월 23일에 입주하였다. 입주 당시
수도자
수는
신부
3명, 종신서원(終身誓願)
수사
1명,
청원자
2명이었다. 1977년 5월 1일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
이 참석한 가운데
축성
식이 거행된 뒤, 한국 가르멜
수도회
는 정식
수도원
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수련
수도원
이 되었다.
동년 6월에는
수도원
대성당 및
피정의 집
이 착공되었는데
피정의 집
건축목적은 개인 피정을 통해 많은
신자
가
기도
생활을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특기해야 될 것은
대부
분의 한국
수도회
가 외국인에 의해 창설되었으나 가르멜 남자
수도회
는 몇 명의 한국인이
프랑스
에 가서
수련
과 공부를 마치고 한국인 스스로
수도회
를 창설한 점이다. 1978년 1월 8일 한국에서는 최초로 4명의
청원자
가
착복식
을 갖고
수련
을 시작해서 다음해 1월 첫
유기
서원
자를 배출했으며, 1980년에는 두 번째로
유기
서원
자를 배출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수도원
의 회원은 현재
서원
자 7명, 지원자 10명, 모두 17명이며 영성분야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수도회
는
은수자
적이면서도 사도적인 삶, 즉 순수
관상생활
이면서도
교회
가 요구하는
사목
을 담당하려고 한다. 따라서
영성신학
연구, 영성사목을 위한 연구와 실천들이 이
수도회
활동의 중추를 이룬다.
영성신학
강의, 영성대화,
고백
성사, 피정지도 등이 현재 한국 가르멜
수도회
가 실천하고 연구하는 분야이다.
가르멜 3회는 1948년
가톨릭대학
신학
부 공베르(Antonius Gombert, 孔安國)
신부
가 처음 발족시켰으나 6.25
전쟁
으로 중단되었다가 서울 수복 후 1953년 수유리 가르멜
수녀
원에서 다시 피정을 갖게 되었으며
회장
으로는 고(故)
엘리사벳
을 선출하였다. 1968년에야
총장
신부
의 인준을 받아 정식으로 가르멜
재속회
의 발족을 보았다. 1970년 10월
교황청
의 인준을 받았다. 1979년에는 피정장소를 인천 계산동 남자
수도원
으로 이전하였는데 현재 허원자 166명, 착복자 25명, 입회자 77명 모두 268명이다.
[참고문헌] C. de Villiers, Bibliotheca Carmelitana, ed. G. Wessels, 2 v. in 9, Rome 1927 / G. Mestres, LexThK25 / P.R. McCaffrey, The White Friars: An Outline of Carmelite Histor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English-Speaking Provinces, Dublin 1926 / W. Nevin, Heirs of St. Teresa of Avila, Milwaukee 1959 / Andre de Ste. Marie, The Order of Our Lady of Mt. Carmel, Bruges 1913 / 오늘의
수도자
들, 분도出版社, 1983 / 귀양의
애가
, 서울 여자 가르멜
수도원
, 1974.
이전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