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3 장 성령을 믿나이다
- 제11절 “육신의 부활을 믿나이다”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98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에 대한 우리 믿음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신경은, 세말에 이루어질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선언에서 절정에 이른다.
- 98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며 영원히 사시는 것과 같이, 의인들도 죽은 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며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시리라는 것을(558) 굳게 믿고 바란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활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업적이 될 것이다.
-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559)
- 990 ‘육신’이라는 용어는 연약하고 죽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560) ‘육신의 부활’은 죽은 다음에 불멸하는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죽을 몸도”(로마 8,11)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 991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요소였다. “죽은 이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이며, 우리는 부활을 믿는 이들이다.”(561)
-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 15,12-14.20).
- I.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 부활에 관한 점진적 계시
- 992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당신 백성에게 점진적으로 계시하셨다. 죽은 이의 육신 부활에 대한 희망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인간 전체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내적 결과로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그분은 아브라함을 비롯해 그 후손과 맺으신 ‘계약’을 충실히 지키는 분이시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부활에 대한 신앙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마카베오 가문의 순교자들은 시련 중에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 7,9).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2마카 7,14).(562)
- 993 바리사이들과(563) 주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564) 부활을 희망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부활 신앙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마르 12,27)이신 분에 대한 믿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 994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한 신앙을 당신 자신과 연결 지으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예수님을 믿고,(565)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566) 마지막 날에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살리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몇몇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돌려주심으로써(567) 부활에 대한 징표와 보증을 주시고, 이로써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부활은 차원이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이 독특한 사건을 요나의 기적과(568) 성전의 표징과(569)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당신이 죽임을 당하신 후 사흗날에 부활하리라고 예고하신다.(570)
- 995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 부활의 증인”(사도 1,22)이(571) 되는 것이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사도 10,41) 하고 증언하는 것이다.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남으로써 아주 분명해진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하게 될 것이다.
- 996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처음부터 몰이해와 반대에 부딪혀 왔다.(572) “그리스도교 신앙은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육신의 부활에 대해 가장 격렬하고 끈질기고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573)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생명이 영적으로 지속된다는 사실은 매우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확실히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가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 죽은 이들이 어떻게 부활하는가-
- 997 ‘부활’이란 무엇인가- 육신과 영혼의 분리인 죽음으로 사람의 육신은 썩게 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을 만나, 영광스럽게 된 그 육신과 다시 결합되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으로, 예수 부활의 능력을 통해, 우리 육신을 우리 영혼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을 육신에 돌려주실 것이다.
- 998 누가 부활할 것인가- 죽은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이다.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9).(574)
- 999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하셨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루카 24,39).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로 돌아오셨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할 것이다.”(575) 그러나 이 육신은 “영적인 몸”(1코린 15,44)으로,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576)
- 그러면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35-37.42.52-53).
- 1000 이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상상력과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으로, 신앙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 육신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앞당겨 맛보고 있다.
- 땅에서 나온 빵도 하느님의 축성을 받게 되면 더 이상 보통의 빵이 아니라,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 두 가지로 이루어진 성체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 육신도 더 이상 썩어 없어질 육신이 아니고, 부활의 희망을 지닌 육신이 됩니다.(577)
- 1001 언제 부활할 것인가- 부활은 “마지막 날에”(요한 6,39-40.44.54; 11,24) “세상 끝 날에”(578)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죽은 이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1테살 4,16).
-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우리
- 1002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이 사실이듯이, 어떤 면에서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금 이 지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콜로 2,12; 3,1).
- 1003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된 신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천상 생명에 이미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579) 그러나 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콜로 3,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에페 2,6).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다.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되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콜로 3,4).
- 1004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믿는 이들의 육신과 영혼은 이미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품위에 참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육신을 소중히 여겨야 함은 물론 다른 사람의 육신도, 특히 그 육신이 고통 당하고 있을 때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 몸은……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3-20).
- II.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죽다
- 1005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살기”(2코린 5,8) 위하여 떠나야 한다. 죽음이라는 이 ‘떠남’에서(580) 영혼은 육신과 분리된다. 그 영혼은 죽은 이들이 부활하는 날 육체와 다시 합쳐질 것이다.(581)
- 죽음
- 1006 “죽음 앞에서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는 절정에 이른다.”(582) 어떤 의미에서 육체의 죽음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사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죽음은 “죄가 주는 품삯”(로마 6,23)이다.(583)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주님의 죽음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584)
- 1007 죽음은 지상 생활의 마침이다. 우리의 삶은 시간으로 계산되며,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변하고 늙어가므로, 지상의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생명의 정상적인 끝마침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죽음은 우리의 삶에 긴박감을 준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삶을 실현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1.7).
- 1008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성경과(585) 성전의 가르침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인 교회의 교도권은 죽음이 사람의 죄 때문에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586) 비록 사람이 죽을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죽지 않도록 정하셨다. 그러므로 죽음은 창조주 하느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었으며, 죄의 결과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587)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육체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588) 따라서 죽음은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1코린 15,26)이다.
- 1009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변화시키셨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본래의 인간 조건인 죽음을 겪으셨다. 그러나 죽음에 직면한 공포에도,(589)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자유로이 순종함으로써 이를 받아들이셨다. 예수님의 순종은 죽음이라고 하는 저주를 축복으로 변화시켰다.(590)
- 그리스도인 죽음의 의미
- 1010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 덕분에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2티모 2,11).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지닌 본질적 새로움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미 성사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총 중에 죽으면 육체적인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성취하고,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속량 행위 안에서 그분과 완전히 한 몸이 된다.
- 이 세상 극변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하려고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내 출생의 때가 가까웠습니다.……나에게 깨끗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내가 거기 닿아야 사람이 될 것입니다.(591)
- 1011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사람을 당신께로 부르신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해서,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필리 1,23)라고 말한 바오로 사도와 같은 바람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죽음을 성부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킬 수 있다.(592)
- 내 지상의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다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샘솟는 물이고, 이 샘물이 “성부께로 오라.”고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습니다.(593)
-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하며, 그분을 뵙기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594)
-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595)
- 1012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은(596) 교회 전례가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597)
- 1013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 “단 한 번뿐인 우리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친 다음에”(598) 인간은 또 다른 지상 생활을 위해 돌아오지 못한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다”(히브 9,27). 죽음 뒤에 ‘환생’이란 없다.
- 1014 교회는 우리가 죽을 때를 위하여 준비하도록 권유하며(“졸연히 예비 없이 죽음에서 주님은 우리를 구하소서.”: 옛 성인 호칭 기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에게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기를 청하고(성모송), 죽음을 앞둔 이의 수호자인 요셉 성인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권고한다.
- 네 모든 행동과 네 모든 생각에서 네가 오늘 죽게 될 것처럼 너는 행동해야 할 것이다. 네 양심이 평안하면,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피하는 것보다는 죄를 피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오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내일은 어떻게 준비가 되어 있겠느냐-(599)
- 내 주님!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신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받으소서. 죽을죄 짓고 죽는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도다, 당신의 짝 없이 거룩한 뜻 좇아 죽는 자들!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600)
- 간추림
- 1015 “육신(caro)은 구원의 축(cardo)이다.”(601) 우리는 육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육신을 속량하기 위해 육신을 취하신 말씀을 믿고, 육신의 창조와 구원의 완성인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 1016 죽음을 통하여 영혼은 육신과 분리되지만,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변화된 육신을 영혼과 다시 결합시키심으로써 우리 육신에게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을 돌려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영원히 사시는 것처럼 우리 모두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다.
- 1017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육신이 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602) 그러나 썩을 몸으로 무덤에 묻히지만 썩지 않을 몸,(603) “영적인 몸으로”(1코린 15,44) 다시 살아난다.
- 1018 “죄를 짓지 않았다면 없었을 죽음”(604) 을 인간은 원죄의 결과로 겪게 되었다.
- 1019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어 자유로이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셨으며, 이로써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