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로(昭陽路) 성당은 춘천교구 소속 본당으로 1950년 1월 5일 죽림동(竹林洞) 본당에서 분가해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Patricius)이다.
8·15 광복 무렵 죽림동 본당 관할이었던 소양로 지역의 신자수가 나날이 늘어나자 사목적 차원에서 본당 설립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그래서 1950년 1월 소양로 본당 설립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콜리어(Anthony Collier, 고高)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본당 설립 당시 신자수는 약 250명이었고, 발산 공소와 금산 공소가 소양로 본당 관할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그해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 신부는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을 대비해 성체를 옮겨 모시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할 권을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전쟁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6월 27일 죽림동 주교좌성당으로 이동하던 중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과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총살당했다. 이로써 콜리어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가운데 한국 전쟁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집사 겸 복사인 김 가브리엘과 밧줄에 묶여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던 콜리어 신부는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인민군 병사는 경고 한마디 없이 총을 난사했다. 그때 김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자신을 끌어안고 쓰러진 콜리어 신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훗날 그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콜리어 신부의 순교 이후 한국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소양로 본당에는 신부가 파견되지 못했다. 그 후 휴전이 되면서 1954년 8월에서야 서울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로 있던 선종완(宣鍾完) 라우렌시오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소양로 본당은 설립된 지 7년 만에 성당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 교구장 퀸란(Thomas F. Quinlan, 구인란具仁蘭) 토마스 주교는 한국 전쟁으로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 곳(소양로, 성내동, 묵호)에 성당을 신축했는데, 그중 소양로 성당이 첫 번째로 건축되었다. 1956년 4월에 3대 주임 버클리(J. Buckley, 부夫) 야고보 신부가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해 같은 해 9월 3일 국내외 여러 은인과 교우들의 도움으로 9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당 건축을 진두지휘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버클리 신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했다. 밖에서 보면 원을 반 뚝 잘라 놓은 반달형이다. 내부는 제대를 중심으로 회중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어, 신자들 모두가 제대와 사제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전례에 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버클리 신부가 당시 유럽에서조차 드물었던 반원형 평면 양식을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버클리 신부가 1953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선포된 성모 성년 때 로마 성지순례를 하는 중에, 현 소양로 성당과 비슷한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며 선교지에 돌아가 성당 지을 기회가 생기면 꼭 이와 같은 성당을 짓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성당 건립 후에도 계속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부임하다가 1967년 9월 15일 풍수원(豊水院) 본당의 이응현(李應鉉) 티모테오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부터 한국인 사제들이 본당 사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각종 신심 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하여 본당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소양로 성당은 건축기법에 있어서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적절히 혼합된 형태이다. 아치형 버팀벽, 천장 몰딩 등은 교회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고전적 기법이다. 반대로 외형을 반원형 평면으로 하고, 실내외 의장과 제단 주변을 소박하게 처리한 점은 현대건축이 추구하는 단순성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또 원형창 유리화를 제대 십자가 조형과 일치시키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2005년 4월 15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소양로 성당은 2006년부터 문화재청과 강원도 및 춘천시의 도움을 받아 원형 보존 작업을 시행하였다. 이음매가 낡은 함석지붕과 창호를 보수하고 없어졌던 성가대와 벽 제대를 복원했다. 붉은 카펫이 깔려있던 제단을 나무 널판으로 바꾸고 목조 난관으로 그 둘레를 둥글게 감았다. 성전 외벽을 두르고 있던 전선을 모두 지하로 넣어 원형을 최대한 살려 2009년 5월 3일 춘천 교구장 장익 주교의 주례로 중창(重創) 축복식을 거행했다.
또한 춘천교구는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콜리어 신부의 순교혼을 기억하고자 소양로 성당을 살신성인 기념성당으로 명명했다. 현재 춘천교구에서는 콜리어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지 확인과 발굴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여러 구술과 기록에 의해 정확한 위치를 찾는 중이다.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대상자인 고 안토니오 신부의 최후 사목지인 소양로 성당과 향후 밝혀지게 될 순교터에 많은 이들의 순례가 이어진다면 교구의 성지로 선포될 수 있는 중요한 신앙의 터가 될 것이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과 가톨릭평화신문 등의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9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