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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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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
천사
이름 :
지명 :
에우제니오(7.13)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 에우제니오 (Eugene)
성인 기본정보
축일
7월 13일
신분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카르타고(Carthago)
활동연도
+501년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오늘날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Tunis] 일대에 있었던 고대 도시) 태생으로 애덕과 성덕 그리고 학식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480년경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임되었는데, 전임자인 성 데오그라시아 (Deogratias, 1월 5일) 주교가 457년에 선종한 후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신봉하는 반달족의 가이세리크(Gaiseric, 428~477년 재위) 왕이 새로운 주교 선출을 방해해서 거의 23년여 만에 이루어진 선거였다. 가이세리크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가톨릭 신자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고, 동로마제국 제노 황제의 요청을 받아들여 새로운 주교 선출을 허용하였다. 주교직에 오른 성 에우제니오는 즉시 카르타고 교회의 회복을 위해 헌신했고, 활발한 자선 활동과 뛰어난 설교와 엄격한 생활로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아리우스 이단에 빠진 많은 반달족의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개종을 이끌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던 후네릭 왕은 반달족이 가톨릭교회에 들어가거나 개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반포하고, 가톨릭 주교들의 공개적인 설교와 직무 수행을 제한하였다. 하지만 성 에우제니오는 하느님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면 반달족의 출입을 허용했다. 그러자 가톨릭교회에 대한 후네릭 왕의 박해가 시작되었고, 정통 교리를 따르는 가톨릭교회와 아리우스파 사이의 관계를 논의한다는 명목으로 484년 2월 초에 카르타고 교회 회의(Synod)를 소집하며 모든 주교의 참여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성 에우제니오는 이 회의가 정통 교리를 옹호하는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을 몰아내고 아리우스파를 추종하는 주교들로 변경하려는 계획임을 알고 로마 교회의 주교들도 초대해야 한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후네릭 왕의 박해는 점점 심해졌고, 정통 교리에 충실한 주교들과 신자들은 멀리 사막으로 추방되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리우스파로 개종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하기 전에는 모든 공적 활동과 사업도 할 수 없었고, 학교와 수도원도 폐쇄되었다. 이때 성 에우제니오 주교도 재판을 받고 트리폴리(Tripoli, 오늘날 리비아의 수도) 사막으로 추방되어 재판을 받고 농장 노동자로 일했는데, 그곳에서 아리우스파 주교인 안토니우스(Antonius)에게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
484년에 후네릭 왕이 죽고 그의 조카인 군타문트(Gunthamund, 484~496년 재위)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487년에 그의 귀환과 활동이 허용되었다. 성 에우제니오는 다시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하며 애덕 실천과 반달족에 의해 추방되거나 체포된 주교들을 찾는 데 힘썼다. 그런 그의 존재가 아리우스파 주교들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결국 군타문트의 형제로 왕위를 계승한 트라사문트(Thrasamund, 496~523년 재위) 왕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를 재개하면서 성 에우제니오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일부 자료는 이미 483년에 순교한 카프사(Gafsa)의 성 빈데미알리스(Vindemialis)와 파마리아(Pamaria)의 성 론지노(Longinus, 이상 5월 2일) 주교도 이때 그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실제 순교했으나 성 에우제니오 주교는 추방형으로 변경되어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 인근 알비(Albi)로 유배 갔고, 그곳에서 성 아마란토(Amaranthus, 11월 7일) 순교자의 무덤 위에 수도원을 짓고 기도와 참회의 삶을 살다가 선종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2일 목록에서 아프리카의 주교인 성 빈데미알리스, 성 에우제니오, 성 론지노가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반달족의 왕 후네릭의 명령으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카프사의 주교인 성 빈데미알리스와 파마리아의 주교인 성 론지노의 순교에 대해서만 기록했고, 7월 13일 목록에서 프랑스의 알비에서 신앙과 성덕으로 유명하며 반달족의 박해 중에 유배와 501년에 선종한 카르타고의 주교 성 에우제니오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적었다. 그런데 5월 2일에 언급된 성 에우제니오 주교와 7월 13일에 기념하는 카르타고의 성 에우제니오 주교가 같은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순교자와 증거자, 483년과 501년의 사망 연도에서도 차이와 혼동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3일 목록에서 성 에우제니오 주교에 대해 설명하면서 후네릭의 박해로 추방당할 때 그의 대부제인 살루타리스(Salutaris)와 무리타(Muritta) 부제와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세 번이나 신앙을 고백하며 그리스도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인내했다고 했는데,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에우제니오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58-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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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성 에우제니오
카르타고의 성 에우제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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