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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괄베르토(7.12)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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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요한 괄베르토 (John Gualbert)
성인 기본정보
축일 7월 12일
신분 설립자, 수도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073년

  •    성 요한네스 괄베르투스(Joannes Gualbertus, 또는 요한 괄베르토)는 985년경 또는 995년경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 피렌체(Firenze) 근교에서 비스도미니(Visdomini)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라 기사(騎士)가 되었고, 젊은 시절 쾌락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았다. 11세기 피렌체는 강력한 귀족 가문들이 서로 다투고 폭력이 난무하는 분열된 도시였다. 성 요한 괄베르토의 유일한 형인 후고(Hugo)가 이런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친척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는 기사로서 형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해 살인자를 찾아서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오랫동안 범인을 찾아다닌 그는 어느 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피렌체의 산 미니아토 알 몬테(San Miniato al Monte) 수도원의 가파른 비탈길에서 살인자와 마주쳤다. 살인자는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고 도망갈 길도 없었다. 성 요한 괄베르토가 칼을 뽑았을 때 살인자는 땅바닥에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벌리고 엎드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비를 간청하였다.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벌린 살인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을 떠올린 그는 차마 살인자를 죽일 수가 없어서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수도원 성당에 갔더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몸을 굽혀 그의 머리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성 요한 괄베르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13년경 산 미니아토 알 몬테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버지도 결국 그의 확고한 결심을 알고는 축복했다고 한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든 덕목을 실천하며 충실히 살았는데, 어느 날 자신의 수도원장이 피렌체 주교로부터 성직 매매를 통해 그 자리에 올랐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직 매매에 강력히 저항하다가 큰 곤욕을 치른 후 그 수도원을 나와 여러 수도원을 전전하며 교회를 개혁할 수 있는 금욕적인 수도 생활에 정진할 것을 결심했다. 그는 성 베네딕토(Benedictus, 7월 11일)의 수도 규칙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성 로무알도(Romualdus, 6월 19일)가 설립한 카말돌리 연합회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카말돌리회처럼 은수 생활에만 치우치지 않고 공동체 생활과 절충된 수도 생활을 하기 위해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고자 결심하였다. 성 요한 괄베르토는 몇몇 수도승과 함께 여러 곳을 방랑한 끝에 1036년경 피렌체에서 동쪽으로 약 48km 떨어진 프라토마뇨(Pratomagno) 산맥에 있는 발롬브로사(Vallombrosa)에 도착했다.

       그는 이곳에 은둔처를 세우고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수도회 공동체를 시작했다. 수도원 성당은 1038년에 봉헌되었고, 1039년에 산텔레로(Sant’Ellero)의 베네딕토회 수녀회로부터 인근 부지를 기증받아 수도원도 마련하였다. 처음에 3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공동체는 나중에 산 미니아토 수도원에서 온 몇 명의 수도승과 피렌체 지방에서 온 평신도들로 증원되었고, 1056년에 교황 빅토르 2세(Victor II)에 의해 정식 인가를 받았다. 성 요한 괄베르토가 설립한 발롬브로사 연합회(Congregatio Vallis Umbrosae)는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따르면서도 몇 가지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다. 즉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수도 생활은 은수 생활의 고행과 금욕 그리고 참회의 생활에 공동체 생활을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체제는 철저히 은둔 생활을 하는 수도승과 행정 전반을 관리하는 평수사(conversi)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에 맞게 산에 은둔소를 두고 아래에는 평수사들이 거처하는 수도원과 방문객 숙소를 두었다. 또한 가대 수도승들이 기도와 관상 생활에 전념하도록 과도한 육체노동이나 실무적인 업무나 행정은 평수사들에게 일임하였다.

       성 요한 괄베르토가 정한 체제는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전통으로 정착되었고, 다른 수도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자신의 수도승들이 쇄신된 생활과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하도록 강조하며, 거친 회색 옷을 입고 철저한 가난을 실천하도록 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침묵과 시간 전례를 철저히 수행하며 공동체 생활의 중심으로서 애덕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철저히 규칙을 지켰고, 결코 다른 형제들보다 우월하게 행동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느님을 섬겼다. 그는 자신이 사제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평생 수도승으로만 남았다. 성 요한 괄베르토의 개혁 정신과 성직 매매자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당시 교회 개혁을 시도하던 교황 성 레오 9세(Leo IX, 4월 19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1051년에 교황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의 성덕과 영적 지혜를 흠모해 많은 이들이 그의 지도를 받으려고 찾아왔고, 그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도 여러 곳에 생겼다. 그는 자신의 수도 규칙을 받아들인 피렌체 근교 파시냐노(Passignano)의 산 미켈레 아르칸젤로(San Michele Arcangelo) 수도원을 방문하던 중 심한 열병에 걸려 1073년 7월 12일 선종하여 그곳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요한 괄베르토가 선종한 뒤에도 그의 규칙을 따르는 발롬브로사 연합회는 토스카나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1193년 교황 첼레스티노 3세(Coelestinus III)가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그는 피렌체의 수호성인이자 산림 관리자의 수호성인이다.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1951년에 그를 이탈리아 산림 경찰대의 수호성인으로도 선포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회색 수도복을 입고 십자가나 T자형 지팡이 또는 수도회 규칙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2일 목록에서 피렌체 근처 파시냐노 수도원에 발롬브로사 수도회의 설립자인 성 요한 괄베르토 수도원장이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피렌체 출신의 군인이었던 성 요한 괄베르토 수도원장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형을 죽인 자를 용서하고, 수도복을 입고 더욱 엄격한 삶을 살고자 발롬브로사에 새로운 수도 공동체를 세운 것을 토스카나 지방 파시냐노에서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요한 괄베르토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36-238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요한 괄베르토',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585-65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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