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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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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
천사
이름 :
지명 :
콘라도(4.21)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 콘라도 (Conrad)
성인 기본정보
축일
4월 21일
신분
수사
활동지역
파르잠(Parzham)
활동연도
1818-1894년
성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1818년 12월 22일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 지방 파사우(Passau) 남쪽에 있는 파르잠이라는 마을에서 신심 깊은 농부인 바르톨로메우스 비른도르퍼(Bartholomaus Birndorfer)와 게르트루드 니더마이어(Gertrude Niedermayer)의 12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나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남다른 신앙심을 보였다. 그는 학교 가는 길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등 특별히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을 지니고 성장하였다. 그는 1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년 뒤에는 아버지마저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가족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내면의 평화를 누리며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주일이면 아무런 음식도 챙기지 않고 고향의 순례지를 찾아 몇 시간씩 무릎 꿇고 기도하곤 했다. 그는 일찍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입회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거절당한 후 1849년, 31살의 나이에 마침내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Cap)에 평수사로 입회할 수 있었다.
그는 독일 남부 최대의 성모 순례지인 알퇴팅(Altotting)의 성녀 안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알퇴팅은 696년에 잘츠부르크(Salzburg)의 성 루페르토(Rupertus, 3월 27일)가 이곳에서 바이에른의 영주에게 세례를 준 뒤 그 영주가 봉헌한 은총의 소성당을 중심으로 점차 바이에른 왕족의 세례 소성당으로 발전했다. 1300년경 제단 한가운데 오른팔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상’을 모셨는데, 이후 ‘검은 성모상’(Black Madonna)의 전구로 기적이 일어나면서 오늘날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찾는 독일 최대의 성모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잘차흐강(Salzach R.) 기슭의 라우펜(Laufen) 수도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1852년 콘라도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했다. 그 후 그는 알퇴팅으로 돌아와 1953년에 그를 기념해 성 콘라도 수도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성녀 안나 수도원의 문지기 소임을 맡았다. 그리고 여기서 41년 동안 문지기 수사로 봉사했는데, 시골 출신의 수줍음 많은 그가 수행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성 콘라도는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가 알퇴팅을 찾기에 가장 먼저 수도원의 ‘얼굴’이 되어야 했다. 수많은 순례자의 질문과 요청에 응답해야 하고 온갖 잔심부름도 도맡아야 했다. 그는 모든 순례자,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친절한 말과 도움을 건네며 그 모든 일을 애덕과 인내를 갖고 실천하였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나중에 그의 시성식에서 그에게 ‘영원한 문지기’라는 별명과 함께 그가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성실하고 겸손하게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라고 칭송하였다. 그는 순례자를 돌보다가도 잠시 틈이 나면 문에서 조금 떨어진 성당 창문으로 가서 제단과 감실의 성체를 바라보며 기도에 잠기곤 했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문지기로 지내고 몇 시간씩 기도에 전념해 잠잘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는 특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혜와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지만, 노령으로 쇠약해져 더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침대에 누운 지 3일 뒤인 1894년 4월 21일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신은 그가 평생을 문지기로 봉사한 성녀 안나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콘라도 수사는 1930년 6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시성 절차로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선종 40주년이 되는 1934년 5월 20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독일에서 나치즘(Nazism)의 오만함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른 시대에 성 콘라도 수사의 소박하고 겸손한 삶이야말로 참된 위대함으로 나아가는 길을 독일인에게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 미술에서 보통 갈색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도복을 입고 흰 수염을 기른 채 십자가를 들고 있거나 빵을 나눠주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또한 1984년부터 파사우 교구의 세 번째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1일 목록에서 독일 바이에른주의 알퇴팅에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 수도자인 성 콘라도 (요한) 비른도르퍼가 40년 넘게 문지기라는 직무를 겸손하게 수행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항상 관대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절대 내쫓지 않고 먼저 친절한 말로 그리스도인다운 위로를 건넸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콘라도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54-356쪽.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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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잠의 성 콘라도
파르잠의 성 콘라도
파르잠의 성 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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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맛을 잘 아는 거룩한 문지기, 파르잠의 성 콘라도
[콘라도(4.21)]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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