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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슬라오(6.30)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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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라디슬라오 (Ladislaus)
성인 기본정보
축일 6월 30일
신분
활동지역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1095년

  •    성 라디슬라우스(또는 라디슬라오)는 1040년경 나중에 헝가리의 왕이 된 벨라 1세(Bela I)의 둘째 아들로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사촌들의 핍박을 피해 폴란드로 망명 갔을 때 태어났다. 벨라 1세는 1048년경 형인 언드라시 1세(Andras I) 왕의 부름을 받고 헝가리로 돌아와서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헝가리의 3분의 1을 통치하였다. 1051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Heinrich III) 황제가 헝가리와 전쟁을 일으켰고, 벨라 1세가 지휘하는 군대가 적들을 맞아 큰 성과를 거두었다. 헝가리와 신성로마제국 간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언드라시 1세의 아들 셜러몬(Salamon)과 하인리히 3세 황제의 딸 유디트(Judith)가 약혼하며 적대적 관계를 청산했다. 하지만 언드라시 1세는 동생인 벨라 1세가 있는 한 자기 아들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음을 알고 벨라 1세를 견제하였다. 결국 벨라 1세는 1059년 이후 가족과 측근들과 함께 폴란드로 가서 언드라시 1세에 대항하는 군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언드라시 1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해 아르파드(Arpad) 왕가의 왕위에 올랐다. 1063년 벨라 1세가 사망한 후 왕위는 언드라시 1세의 아들인 셜러몬이 이어받았고, 1074년 다시 벨라 1세의 첫째 아들인 게저 1세(Geza I)가 계승했다.

       성 라디슬라오는 1077년 형이 33살의 나이로 헝가리의 바츠(Vac)에서 사망한 후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형인 게저 1세에게 밀려난 셜러몬과 그의 추종 세력들로부터 퇴위 요구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무사히 넘기고 왕권을 안정시켰다. 그는 1078년경 슈바벤(Swabia)의 공작 라인펠덴(Rheinfelden)의 루돌프(Rudolf)의 딸인 아델라이데(Adelaide)와 결혼하였다. 그는 국가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먼저 유목민 시절의 관습에 기초한 법들을 개정해 그리스도교 국가의 이념에 맞는 법들로 재정비하고 새롭게 법전을 편찬했다. 그는 또한 헝가리의 국가 영웅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용맹한 왕이다. 1091년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을 정복해 헝가리의 영토를 최대한 확장한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 정복한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고 이교도의 개종을 돕기 위해 자그레브(Zagreb)에 주교좌성당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지 회복을 위한 제1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출전에 앞서 체코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갔다. 하지만 1095년 7월 29일 헝가리와 보헤미아(Bohemia)의 국경지대에 있는 니트라(Nitra, 현재 슬로바키아 서부의 도시)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성 라디슬라오는 헝가리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왕이었다. 그는 통치자로서 헝가리를 안정시킨 왕일 뿐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며 덕행을 행하는 데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헝가리 내에 여러 교구를 신설하고 많은 성당을 세우며 교계제도를 재정비해 교회에 대한 왕권의 영향력을 키우기도 했다. 그는 왕국 내 이교도들의 개종에 큰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유다교와 이슬람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베풀며 화합을 도모하는 관대함도 보였다. 그는 또한 1083년에 성 스테파노(Stephanus, 8월 16일) 왕과 성 에메리코(Emericus, 11월 4일) 왕자 그리고 성 제라르도 사그레도(Gerardus Sagredo, 9월 24일) 주교의 시성을 추진해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의 승인을 받았다. 그로써 헝가리 최초로 성인품에 오른 세 성인의 유해를 헝가리의 주교들과 수도원장, 고관들의 회의를 소집해 장엄한 예식으로써 공경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그는 헝가리의 성왕(聖王)으로 칭송받는 성 스테파노를 거울삼아 그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여 헝가리 가톨릭교회의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성 라디슬라오는 선종 직후부터 사람들로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선종 후 1091년에 그가 세운 소모기바르(Somogyvar) 수도원에 안장했다가 1192년 교황 첼레스티노 3세(Coelestin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오를 때 나지바라드(Nagyvarad) 대성당으로 이장해 안치하였다. 나지바라드는 오늘날 헝가리 국경 부근 루마니아의 영토에 속한 오라데아(Oradea)이다. 성 라디슬라오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곳은 점차 성 라디슬라오 공경의 중심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헝가리와 헝가리 군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27일 목록에서 헝가리의 나지바라드에서 기적과 성덕으로 널리 알려진 성 라디슬라오 왕을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30일로 기념일을 옮겨 오늘날 슬로바키아의 니트라에서 헝가리의 왕인 성 라디슬라오가 선종했는데, 그는 통치 기간에 성 스테파노 왕이 도입한 그리스도교 법을 복원하고 관습을 개혁하며 스스로 미덕의 모범이 되었다고 적었다. 또한 헝가리 왕국과 연합한 크로아티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고자 노력하며 자그레브에 주교좌를 설립했으나 보헤미안과의 전쟁 중에 선종했고, 그의 시신은 나중에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 오늘날 루마니아의 중서부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역)의 오라데아에 안치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라디슬라오 1세는 성 라슬로 1세(Laszlo I) 또는 라디슬라프 1세(Ladislav I)로도 불린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라디슬라오 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32-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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