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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12.14)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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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Nimatullah Youssef Kassab Al-Hardini)
성인 기본정보
축일 12월 14일
신분 신부, 수도승
활동지역 레바논(Lebanon)
활동연도 1808-1858년

  •    성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는 1808년 레바논의 하르딘(Hardin)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마로니트(Maronite) 전례의 수도원 전통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의 형제들 중 네 명이 사제나 수도승이 되었고, 성 니마툴라 역시 1828년 많은 수도승들이 모여 있는 카디샤(Qadisha, 일명 신성한 계곡 Holy Valley) 부근 퀘자야(Qozhaya)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수련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2년간 머물렀고 니마툴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련기 중에 그의 개인적 · 공동체적 기도생활은 더욱 깊어졌고, 직접 노동에 헌신하며 동시에 책을 제본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는 특히 성체성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 시간에, 때로는 잠자는 시간을 희생하면서도 종종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팔은 십자가 형태로 들어 올린 채 눈은 성체를 모신 성합에 고정시킨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1830년 11월 14일 첫 서원을 한 성 니마툴라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도록 레바논 북부 크피판(Kfifan)에 있는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와 유스티나(Justina)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1833년 12월 25일 그는 사제품을 받고 수련소의 책임자이자 교수가 임명되었다.

       1840년과 1845년의 두 번의 내전 동안 그는 백성들과 함께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의 형제인 엘리샤(Elisha) 신부가 그에게 은둔소로 들어갈 것을 제의했을 때 그는 공동생활 속에서 덕을 쌓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과를 준수하며 매일의 시간을 순교자다운 자세로 살았다. 수도승은 언제나 동료 수도승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며 온갖 추문의 여지로부터도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반면 은수자들은 홀로 살며 모든 외부적인 유혹으로부터도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이 기간은 그의 영성생활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었고, 그는 레바논과 그의 수도회를 위해 하느님께 스스로를 봉헌하며 살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모토를 갖고 살았으며, 종종 동료 수도승들에게 이를 반복해 말하곤 하였다.

       성 니마툴라 신부는 때때로 상급 책임자들로부터 스스로에게는 너무 혹독하고 다른 수도승들에게는 너무 자애롭고 관대하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는 친교와 형제애라는 단어 안에서 성성(聖性)을 이해하였다. 그래서 ‘수도승의 첫 번째 관심은 밤이든 낮이든 형제 수도승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는 주목할 만한 말을 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그의 강인함의 원천인 동정 성모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성모님의 거룩한 이름을 반복해 부르는데 있어 결코 지치지 않았고, 1854년 교회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포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신비를 그의 마음 속 아주 특별한 곳에 간직해 두었다. 삼종기도 후에 그는 종종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는 축복받으소서.”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1845년에 그는 교황청에 의해 수도회의 부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성 니마툴라 신부는 총원장에게 수도승들이 그들의 학문에서 더욱 진보할 수 있도록 예수회에 의해 그하지르(Ghazir)에 새로 설립된 대학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부원장으로서 두 번 이상의 임기를 봉사했지만 총원장 아빠스로 지명되는 것에 대해서는 완곡히 거절하였다. 그가 수도원의 책임 있는 직책을 맡는데 있어 주저한 것은 그의 깊은 겸손과 수도승과 수도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만남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멀어지게 한다는 그의 진지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부원장으로 재임하는 중에도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수도원의 관습에 따라 그의 개인적인 용무를 돌보아 주는 특별한 보조자를 두는 것조차 거부하였다.

       1858년 12월 크피판의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을 지도하던 그는 그 지방에 퍼진 독감에 걸려 위중한 병에 걸렸고,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12월 14일 50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동정 성모 마리아의 이콘을 손에 쥐고 “오, 성모님, 당신께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는 말을 남기고 선종하였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레바논의 고통의 시간과 수도회 내의 어려움 중에 그의 동료 수도승들과 이웃들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어 ‘크피판의 성인’으로 알려졌었다. 그는 1998년 5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4년 5월 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참고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507-5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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