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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지명 :
베네딕토(무어인)(4.4)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 베네딕토(무어인) (Benedict the Moor)
성인 기본정보
축일
4월 4일
신분
수사
활동지역
팔레르모(Palermo)
활동연도
+1589년
성 베네딕투스 마나세리(Benedictus Manasseri, 또는 베네딕토)는 1526년경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메시나(Messina) 근처 산프라텔로(San Fratello, 중세 시대에는 산필라델포[San Filadelfo]로 알려진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인 크리스토포로 마나세리(Cristoforo Manasseri)와 디아나 라르칸(Diana Larcan)은 아프리카(아마도 에티오피아) 출신 노예로 메시나 근처 마나세리라는 지주에게 속했기에 그의 성을 따랐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해 주인의 신임을 얻었고, 첫째 아이는 자유인으로 태어나게 해주겠다는 주인의 약속을 받았다. 성 베네딕토는 장남으로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나 그 시절 대부분의 농민들처럼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온유하고 과묵하며 고독을 즐기던 그는 숲과 계곡에서 기도와 참회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18살에 집에서 나와 홀로 양치기로 일하면서 자신이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웃들로부터 ‘일 산토 모로’(il santo Moro, ‘성스러운 무어인’이란 뜻)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일 모로’(il Moro)라는 말이 ‘검은 피부색’을 뜻하기도 하지만, 무어인의 혈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검은 피부색과 부모가 노예였다는 이유로 또래들로부터 조롱과 괴롭힘, 구타와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했으나 늘 인내심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근처 몬테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 은수자 공동체의 지도자인 제롤라모 란차(Gerolamo Lanza)의 도움으로 괴롭힘에서 벗어나 상처를 치료받고 은둔 공동체에 초대를 받았다. 얼마 후 그는 21살의 나이에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고 고향 근처 산타 도메니카(Santa Domenica) 은둔 공동체에 합류하였다. 이 공동체는 프란치스코 관상 수도회의 한 분파였는데, 방문객이 점점 늘어나자 팔레르모 근처 몬테펠레그리노로 거처를 옮겼다. 성 베네딕토는 이곳에서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서약 외에도 엄격한 금식과 금욕을 실천하며 동료 수도자들로부터 ‘천사’와 같다는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1560년경 제롤라모 란차가 선종한 후 평수사에 문맹이었지만 후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1562년 교황 비오 4세(Pius IV)가 독립적인 은수자 공동체를 해산하고 정식 수도회에 소속될 것을 명했을 때, 성 베네딕토는 팔레르모 대성당에 가서 기도하며 여러 차례 탈혼을 경험한 후 개혁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선택하였다. 그는 팔레르모의 산타 마리아 디 제수(Santa Maria di Gesu) 수도원에 평수사로 입회하여 수도명으로 성 필라델포의 베네딕토(Benedictus a Sancto Philadelpho, Benedetto di San Filadelfo)를 받았다. 그는 처음에 산타나 디 줄리아나(Sant’Anna di Giuliana) 수도원으로 가서 3년을 보낸 후 팔레르모로 돌아와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다. 1578년 수도회의 새 원장을 선출해야 했을 때 평수사이자 문맹이었던 성 베네딕토가 뽑혔는데, 이는 그가 늘 겸손하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지못해 이 직책을 수락했으나 뛰어난 판단력과 재치로 성공적으로 원장직을 수행했고,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의 규칙을 글자 그대로 엄격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수도원장 임기가 끝난 후에는 수련원장으로 임명되어 수련생들에게 훌륭한 가르침과 함께 삶의 모범이 되어주었다.
늘 주방에서 평범하고 고요한 삶을 살고 싶었던 성 베네딕토는 노년이 되어서야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이해심과 동정심으로 많은 이들을 대하며 영적인 조언과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음식을 구걸하는 가난한 이들부터 치유를 원하는 병자들, 그리고 조언과 영적 지도를 구하는 총독과 부유한 권력자들도 주방에서 일하는 그를 찾아왔다. 일생을 금욕과 고행 속에 살며 은수자로서 기도에 전념하고자 했던 성 베네딕토는 1589년 4월 4일 짧은 투병 끝에 자신이 예언한 날에 팔레르모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수도원 성당 지하에 안장되었고, 그에 대한 명성과 성덕이 널리 퍼져가면서 많은 이들의 공경을 받았다. 그는 특히 아메리카에서 ‘흑인 베네딕토’라고 불리며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들의 특별한 수호자로 공경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흑인보다는 누비아인(Nubians, 아프리카 수단 북부와 이집트 남부에 거주하던 소수 민족)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이 활발해지면서 시복시성이 이루어지기도 전인 1713년에 팔레르모 시의회는 그를 팔레르모의 성녀 로살리아(Rosalia, 9월 4일)와 함께 팔레르모의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였다.
1611년에 그의 무덤은 성당 제단 왼쪽에 새로 마련되었고,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되어 1743년 5월 15일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한편 2023년 7월 팔레르모 외곽을 휩쓴 화재로 인해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던 성 베네딕토의 유해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 작은 형제회에서는 4월 3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는데, 옛 “로마 순교록”도 4월 3일 목록에서 성 필라델포의 성 베네딕토 증거자가 피부색 때문에 ‘검은 베네딕토’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는 작은 형제회 소속으로 4월 3일 주님 품에 안겼다고 했다. 그는 기적을 행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고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4일 목록으로 옮겨 팔레르모에 피부색 때문에 ‘무어인’으로 불렸던 성 베네딕토 마나세리가 처음에는 은수자였으나 나중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가 되어 모든 일에 겸손하며 언제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성 베네딕토 마나세리(또는 마나사리[Manassari], 마사라리[Massarari])는 ‘성 베네딕토 무어인’, ‘팔레르모의 성 베네딕토’, ‘성 베네딕토 흑인’, ‘아프리카의 성 베네딕토’, ‘산프라텔로(산필라델포)의 성 베네딕토’ 등으로도 불린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베네딕토 필라델포 평수사',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53-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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