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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12.1)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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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나훔 (Nahum)
성인 기본정보
축일 12월 1일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7세기BC

  •    엘코스(Elkosh) 출신의 예언자 성 나훔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남긴 조그마한 예언서밖에 없다. 그나마 이 예언서까지 숱한 주석 상의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성경 주석가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추정은 그가 유다 출신의 예언자라는 사실 뿐이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유다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동시에 유다에 구원을 선포하고 외적의 공략이 더는 없으리라는 보장(2,1)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8의 히브리어 알파벳 자음의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 ‘알파벳 노래’(acrostic 시편)를 통해 나훔이 ‘성전(聖殿)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나훔이 성전의 모든 의식(儀式)과 활동에 정통한 예언자로서 성전 주변에 머무르며 자기 예언직을 수행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나훔 예언자는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가 함락(기원전 612년)되기 직전 격동의 어두운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역사를 주관하시는 참된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선포함으로써 위로와 희망을 전해준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나훔서는 주님의 분노를 알리는 알파벳 순서의 ‘시편 - 예언자의 반성 - 역사적 사건의 회고’라는 도식으로 짜여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 중, 이 찬미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주님의 지상 통치권을 찬양하였다. 비록 나훔서의 서두에 나오는 이 시편이 예언자 나훔의 생존 당시보다 훨씬 후대에 작시(作詩)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지만, 아직 확증할 방도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훔이 직접 이 시편을 작시했거나, 아니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를 인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찬양 시를 봉독하며 우주를 지배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찬미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의 정열과 그분의 선하심과 권능에 대한 신앙을 견고케 할 수가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자기 나라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괴롭히는 이방 민족까지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앙고백과 찬미로 시작하는 나훔 예언자의 반성은 그가 선포한 메시지를 역사적 현실을 들어 예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하느님은 원수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요 외로운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나 불경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는 하느님이시다. 물론 여기서 의인(義人)이란 이스라엘 백성이고 악인이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아시리아인이다. 나훔 예언자는 기도문으로 사용된 이 예언서에 풍부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죄악의 도성(都城) 니네베가 패망하리라 예고하였다(2,4-3,19).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례 때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니네베의 패망을 목전의 현실처럼 절감하고, 오랜 시일 동안 신앙과 희망을 고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훔서의 저자는 의(義)와 불의(不義)에 대해서 정열적으로 작품을 썼다.

       나훔이라는 예언자의 이름은 ‘주님께서 위로하시다’ 또는 ‘주님의 위로’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나훔야’의 줄임말로 보인다. 이름의 뜻대로 그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던 아시리아 제국의 몰락과 하느님의 승리를 선포함으로써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또한 나훔은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을 찬양하자고 외쳤다. 예언자가 전례나 설교에서 역사의 하느님을 상기시키는 의도는 현재 상황의 의미를 깨닫고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목표가 어디 있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훔 예언자의 메시지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든 인류의 ‘절대 미래’는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악의 세력과 영화와 권세는 한낱 풀포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나훔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1287-1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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