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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서의 해: 히브리서 -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이신 예수님

501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10-17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히브리서 -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이신 예수님

 

 

오늘 우리가 살펴볼 「히브리서」는 아마도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문헌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바오로 사도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알려진 이 문헌은 사실 발신인(바오로)과 수신인(히브리인들)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할 서두의 ‘인사’ 부분이 아예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지막 몇 구절(13,22-25)을 제외한다면, 히브리서 전체는 서간이라기보다 오히려 설교나 강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문헌은 도대체 누가 작성한 것일까요? 저자에 대한 논쟁은 이미 초대 교회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익명으로 작성된 이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작품으로 간주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신학적 견해나 어휘 사용에 있어서 바오로의 서간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친저성 논란은 4세기 말경에 확정된 ‘경전’(Canon) 목록에 히브리서가 포함되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논쟁은 다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바오로의 친저성을 부인하며, 이를 넘어서 당대의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예: 바르나바, 아폴로, 실라스 등)을 저자로 지목하려는 시도 자체를 아예 포기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간에서 드러나는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이나, 높은 수준의 문학적 표현 등을 근거로, 저자가 헬레니즘 교육을 잘받은 어떤 유다계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신인과 관련해서도 이 서간이 꼭 히브리인들을 향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은 1세기 어느 무렵에 서간이 먼저 쓰이고서 한참 지난 후에(200년경) 따로 붙여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구약성경이 자주 인용되고, 유다교 전통과 제례에 관한 다양한 표상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서간의 수신자들이 대부분 유다 문화에 익숙한 이들, 특히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가능성은 꽤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지식보다 우리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신학 사상입니다. 히브리서는 교리적인 내용을 주로 전하는 부분(1-10장)과 신자들의 삶에 대해 권고하는 부분(11-13장)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설명하기 위해 구약의 다양한 표상과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본인의 탁월한 문학적, 신학적 재능을 발휘합니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천사들보다 훨씬 높으신 분이며(1,5-14), 모세보다도 훨씬 위대하신 분(3,1-6), 그리고 무엇보다 ‘멜키체덱의 사제직을 잇는 영원한 대사제’로 드러나십니다(4,14-5,10; 6,20-10,39). 사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을 사제 또는 대사제로 칭하는 경우가 없는데, 오직 히브리서 저자만이 그리스도의 특성을 구약의 사제직과 연결하는 심오한 신학 사상을 전개해 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대사제들처럼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시지만, 여러모로 이들을 훨씬 능가하시는 분, 즉 “새 계약의 중개자”(9,15)로 드러나십니다.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신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고(7,27)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서만 제물을 바치는데, 그것도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흠 없이 깨끗한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그 일을 완수하십니다. 새로운 대사제의 이 거룩한 제사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시는 것이며”(9,28),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로써”(9,12) 옛 계약을 대체하는 완전히 새로운 계약의 제사로 드러나게 됩니다(8,7-13).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는 놀랍게도 오늘 우리가 드리는 미사 안에서 그대로 완전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4,15) 대사제이시기에, 그렇게 당신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바친 거룩한 몸과 피를 심지어 우리들이 받아 모시도록 기꺼이 내어주십니다. 이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랑의 표징을 더 보여달라고 그분께 청할 수 있겠습니까? 미사 안에서 받아 모시는 성체는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주님께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020년 10월 18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인천주보 3면,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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