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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86 ‘우리’ 아버지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라는 대명사는 ─ 우리 편에서 볼 때 ─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 2787 우리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선포된 하느님 사랑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한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곧,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이제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이 새로운 관계는 거저 주어진 상호 소속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의와 자비로써,(3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은총과 진리”에 응답해야 한다.(37)
  • 2788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백성이 ‘마지막 때’에 드리는 기도이므로, ‘우리’라는 이 말은 또한 하느님의 궁극적 약속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희망을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에서 승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묵시 21,7).
  • 2789 ‘우리’ 아버지께 기도드릴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우리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다. 성부께서 천주성의 ‘근원이시고 기원’이시므로, 천주성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께서 영원히 성부에게서 나시고, 성령은 성부에게서 발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부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치가 성부와 성자의 유일하신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위격들을 혼동하지도 않는다. 거룩하신 삼위께서는 같은 본체이시며, 분리되지 않으신다. 우리가 성부께 기도드릴 때, 우리는 성자와 성령도 함께 흠숭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 2790 문법적으로, ‘우리’라는 낱말은 여러 사람에게 공동으로 관계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한 분만 계신데, 그분의 외아들에 대한 믿음을 통해 외아들에게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 사람들이 그분을 아버지로 알아 모신다.(38)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이와 같은 친교이다. 교회는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로마 8,29) 되신 외아들과 결합하여 같은 한 성령을 통하여, 같은 한 성부와 친교를 이룬다.(39) ‘우리’ 아버지께 기도할 때, 세례 받은 각 사람은 이러한 친교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사도 4,32).
  • 279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분열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에게 공동의 유산이자 절박한 호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일치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은 당신 제자들의 일치를 염원하면서 바치신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해야 한다.(40)
  • 2792 끝으로, 만일 우리가 참되게 ‘우리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는 개인주의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사랑이 우리를 개인주의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 첫머리에 나오는 “우리”와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네 가지 청원의 “저희”는 아무도 제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이 말을 하고자 한다면,(41) 우리는 분열과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
  • 2793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내어 주신 모든 사람을 하느님 대전에 데려오지 않고서는, 세례 받은 이들이 ‘우리’ 아버지라는 말로 기도드릴 수 없다. 하느님 사랑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우리의 기도에도 국경이 없어야 한다.(42) ‘우리’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아직도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도록,(43) 우리는 그들 모두와 더불어 그리고 그들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이러한 배려는, 모든 훌륭한 기도자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우리가 감히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때, 우리의 기도는 그런 폭넓은 사랑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