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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07 여기서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말은, 우선 원인을 나타내는 의미(하느님 홀로 거룩하게 하신다)가 아니라, 오히려 존중의 의미에서,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알아 모시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흠숭에서는 그 같은 간청이 이따금 일종의 찬미와 감사드리는 행위로 이해된다.(5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소원의 형태로, 곧 하느님과 인간이 관련된 청원과 열망과 기대감인 이 청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 첫 번째 청원을 드리는 순간부터 그분 신성의 신비로운 내면을 만나게 되고, 또한 우리 인류 구원의 드라마와도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은,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려고”(에페 1,4),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에페 1,9) 우리를 포함시킨다.
  • 2808 구원 경륜의 결정적인 순간들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밝히시는데, 당신의 일을 수행하심으로써 그 이름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날 때, 하느님의 일도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한 신비의 다가갈 수 없는 중심이다. 이 신비 가운데 창조계와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을 성경은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58)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한 모습으로”(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다.(59)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60) 그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콜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 2810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 약속에 따른 맹세에서(61)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지만,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시고,(62)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구해 내심으로써 온 백성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신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탈출 15,1) 시나이 산 계약 이후, 이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느님의 이름이 그들 안에 머무르고 계시므로, 그들은 ‘거룩한 민족’(또는 ‘축성된 백성’ - 히브리 말로는 같은 말이다)이 되어야 했다.(63)
  • 2811 그런데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법’을 주시고, 거듭 주셨음에도,(64) 또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생각해서” 인내를 보이심에도, 백성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 등을 돌리고, “뭇 민족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65) 그 때문에 구약의 의인들과,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가난한 이들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느님 이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것이다.
  • 2812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졌고, 사람이 되심으로 ‘구세주’로서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66) 곧, 예수님의 신원(Ipse Est)과 말씀과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67)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의 핵심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 당신께서 성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6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부의 이름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69)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파스카를 끝마치셨을 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예수님께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주님’이시다.(70)
  • 2813 세례성사의 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11).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생에 걸쳐 “거룩하게 살라고”(1테살 4,7)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거룩함이 되셨습니다”(1코린 1,30).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가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의 첫 번째 청원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하신데, 누가 그분을 거룩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는 말씀에 따라, 세례성사로써 거룩하게 된 우리는 우리가 꾸준히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잘못을 저지르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성화를 통해 우리의 죄를 정화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를 날마다 청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함이 우리 안에 지속되기를 비는 것입니다.(71)
  • 2814 하느님의 이름이 뭇 민족 가운데서 거룩히 빛나시는 것은 불가분으로 우리의 삶과 기도에 달려 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하느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이 타락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는 이름도 바로 이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사실, 우리가 착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찬미를 받으나, 우리가 악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모독을 받는다.”(로마 2,24)(72)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신 그만큼, 우리의 삶도 거룩해지도록 기도합니다.(73)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할 때,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아직도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하라고 하신 계명을 우리가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소서.”라고 가려서 말하지 않고, 그 이름이 모든 사람 안에서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74)
  • 2815 모든 청원을 포함하는 이 청원은, 뒤이어 오는 다른 여섯 청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기도를 통해서 받아들여진다.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75) 바치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에서 이렇게 청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켜 주십시오”(요한 1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