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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10.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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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북, 한반도 평화 앞당기는 ‘큰 걸음’
교황, 북 초청장 오면 ‘무조건 응답하겠다’ 의지 밝혀
▲ 프란치스코 교황과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이 18일 마주앉아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잠깐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화의 사도 교황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문 대통령의 환한 미소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느껴진다. 교황은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문 대통령을 격려한 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청와대 제공



로마의 주교 교황을 칭하는 폰티펙스(Pontifex)에는 다리를 놓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라틴어 명사 pons는 다리, 동사 facere(facio)는 …하다(만들다)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에서)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은 한반도가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의 새 시대로 건너가도록 다리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교황에게 이런 의지가 갑자기 샘솟은 것은 아니다. 교황은 지난 2월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내 가슴과 머리에 항상 한반도가 있다"고 밝혔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16일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최근 몇 달 동안, 교황 성하께서 최소 열 번에 걸쳐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공식적으로 호소했다"고 밝혔듯이, 교황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해왔다.

교황 방북은 한반도 운명에 대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큰 사건이다. 교황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 얼어붙은 땅을 축복하는 광경은 12억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지켜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도덕적 권위자의 평양 메시지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메시지는 한반도 평화에 집중되겠지만, 교황이 종교 자유를 포함한 인권과 인간 존엄성에 관한 내용을 빼놓을 리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불가역적 결단 없이 바티칸에 초청장을 보낼 수는 없다. 만일 김 위원장이 교황까지 초청해 놓고 나중에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면 더한 비난과 고립에 처하게 된다. 초청장 발송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평화를 향해 나가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황 방북이 한반도 평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낙관하는 근거는 또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쿠바의 2014년 관계 정상화 뒤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립적 개입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앞서 두 나라 관계 정상화의 돌파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1998년 미국에 완전히 봉쇄당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 땅을 밟은 데서 열렸다.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일성은 "쿠바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세계는 쿠바를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교황 방북이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과 대북제재 완화 논의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다.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 "평양 장충성당은 가짜" 혹은 "종교를 탄압하는 나라에 가봐야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한다"며 우려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부차적 문제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평화의 사도는 평화를 목말라하는 곳에 먼저 달려간다.

우리는 한반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이 기도의 열매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23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명동대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해왔다.

또한 교황이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에게 전한 격려 메시지에도 주목한다. 교황은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교회,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를 격려하는 말로 받아들인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