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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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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피어나는곳에] “불치병 딸 고칠 수 있다면 제 목숨이라도…”
25년 전 사별 후 홀로 남매 키워 갑자기 쓰러진 딸 모야모야병 진단매달 병원비 수백만 원, 빚 쌓여









 
▲ 김진선씨가 딸 최수연씨의 눈물을 닦아주다 자신도 감정이 북받쳐 울고 있다.


 












 
▲ 송재남 신부


 

 



“엄마, 나 다녀올게!”



그날 아침 최수연(가명, 에스테르, 34)씨는 평소처럼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그게 두 발로 걷는 딸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김진선(가명, 율리아나, 62)씨는 몰랐다.



“어머니, 수연이가 밥 먹다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비틀거리더라고요. 우선 병원에 데려왔어요.” 딸 직장동료에게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김씨. 뇌출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원인은 바로 ‘모야모야병’. 특별한 이유 없이 뇌혈관이 막히는 희소병이자 불치병이다.



25년 전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김씨의 삶을 지탱해준 건 딸이었다. 일찍 철들어 늘 똑똑하고 야무졌던 맏이. 그는 7살 터울 남동생을 딸에게 맡기고 돈벌이에 몰두했다. 식당일부터 모텔 청소, 보험ㆍ카드회사 영업,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여성이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



그동안 딸은 잘 자라줬다. 영화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한 뒤엔 ‘취업 턱’을 낸다며 제주도에 가자고 했다. 모녀가 손을 꼭 잡고 푸른 바다를 바라본 순간은 김씨에게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다. 그렇게 삶의 보람과 기쁨을 안겨줬던 딸은 하루 만에 어머니의 병시중이 절실한 몸이 돼버렸다.



현재 최씨의 오른쪽 팔다리는 마비된 상태다. 도움이 없으면 혼자 샤워는커녕 식사도 쉽지 않다. 재활치료를 하고 있지만, 치료 속도는 더디다. 인지능력도 대여섯 살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에 아직 내 자리 있지?”라고 묻는다. 그때마다 김씨는 눈물이 나온다.



김씨가 딱딱한 철제 보조침대에서 먹고 자며 딸 병수발을 한 지도 3년째. 마지막으로 집에 간 게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다. 온몸은 파스 범벅에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산다. 수입은 없는데 매달 병원비만 200~300만 원이 나간다. 빚은 차곡차곡 쌓였다. 큰 언니를 돕기 위해 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내줘 그나마 연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는데, 우애인들 영원할까. 곤란해 하는 동생들에게 김씨는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주님께 ‘제 목숨을 드릴 테니 부디 제 새끼가 걷게만 해주소서’라고 기도한 적도 많아요. 수연이가 다시 걷게 되면 꼭 다시 제주도에 가자 했어요. 그때 참 좋았는데….”



제주도 이야기를 듣자 최씨가 왼쪽 어깨만 들썩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아기 타이르듯 김씨가 딸을 달랬다. “울지 마, 우리 수연이 머리 아파요.”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후견인 / 노원본당 주임 송재남 신부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성격의 어머니가 많이 지친 데다 경제적 타격까지 겹쳐 힘들고 우울해 합니다. 격려와 지지를 통해 삶의 활력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김진선씨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24일부터 30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