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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사설/칼럼
2020.05.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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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나 그리고 당신을 보는 시간
임종진 스테파노(사진가)



책상 옆에 있는 작은 액자 속 사진에 문득 시선이 고인다. 가만히 자리를 고쳐 앉아 액자 뒤판을 열고는 손바닥 위에 사진을 올려놓았다. 조심스럽게 매만져도 본다. 컬러 사진이지만 누렇게 퇴색된 색감이 왠지 정겹기만 하다. 촬영 연도가 1978년으로 찍혀 있는 낡은 사진을 군데군데 뚫어지라 살폈다. 그해 봄 아니면 가을쯤 하루였을 날씨는 아주 화창해 보였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로 불렸다) 소풍을 나온 사진 속 주인공 일가족은 날씨만큼 즐거운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표정들 하나하나가 눈에 선하게 밟히는 이유는 이들이 내 어머니와 두 동생 그리고 열 살짜리 맏형인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천명을 넘긴 나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날 하루를 맘껏 상상했다. 몇 해 전 여의어 이제 그리움을 품고 사는 나의 어머니. 생머리를 곱게 뒤로 넘긴 젊디젊은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스러우면서도 일찌감치 일어나 김밥을 싸고 나들이 옷차림을 고르셨을 당신의 분주했을 아침이 고스란히 눈에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사진은 그것만을 얘기하지 않았다. 주변 풍경 속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를 나온 또래 학생들의 해맑은 얼굴까지. 그날 하루 모두 얼마나 즐거웠을까.

이렇게 자신의 옛 사진을 들추어 보는 일은 나의 존재성을 느끼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자신의 소중한 삶의 여정들이 온전히 담겨 있음은 물론 '나'를 향한 사랑과 세상의 관심까지 모두 살필 수 있는 특별한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삶이 지닌 존엄성의 실체를 그 누군가의 옛 사진들을 통해 알아차릴 때가 많다. 그를 향해 온 맘을 다해 정성이 들여지고 있었음을 인지하고 '그'가 얼마나 귀한 생명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세상 사람들의 아프거나 궂긴 소식이 곳곳에서 들리는 요즘 마음이 무척 아프기도 하다. 전파를 타거나 온라인 선상에서 흐르는 누군가의 삶에 드리운 고달픈 상황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친분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그렇다. 거리를 오갈 때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대체로 표정이 어둡거나 무거운 이들이 훨씬 많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싶어 자꾸 마음이 쓰인다. 눈에 드는 대부분 구구절절한 상황들이요 어찌 보면 '남'들의 일일 뿐인데 이 오지랖 넓은 성정을 오래도록 누를 수가 없다. 그리고 홀로 상상한다.

아! 이 얼마나 귀한 삶인가.

지금에 이르러 사진을 통해 자기 일상의 의미를 찾는 행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풍경이기도 하다. 누구나 스마트폰 사진으로 자기의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시 상상한다. 여전히 담겨지고 있을 당신의 귀한 삶과 사진을.



임종진 스테파노
월간 말, 한겨레신문 등에서 사진 기자로 일했다. 현재 한국사진치료학회 상임이사 및 1급 사진심리상담사로서 5ㆍ18 고문피해자, 70ㆍ80년대 조작간첩고문피해자 등의 국가폭력이나 부실한 사회안전망 아래 심리적 상처를 입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