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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2019.10.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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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어둠 안의 주님의 현존 / 박진호
가을의 맑고 투명한 햇살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나는 주님의 현존에 대해 고민하며 믿기보다는 일상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고자 합니다. 내 신앙의 선조인 김상옥 의사의 삶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상옥은 1923년 1월 12일 독립군 탄압의 대명사인 서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합니다. 수백 명의 일본 경찰은 양손에 권총을 쥐고 민가의 지붕을 넘나들며 신출귀몰하는 김상옥 의사를 쉽게 체포하지 못하였고 3시간여 동안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김상옥 의사는 마지막 한 발의 총알로 자결하면서 34살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나의 외할머니는 김상옥 의사의 조카딸이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외할머니께서는 김상옥 할아버님의 신앙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외할머님의 영웅이셨고 삶의 모범이셨습니다. 김상옥 할아버지는 늘 베개 대신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시며 읽으시고 베고 주무셨답니다. 그분의 초인적인 힘은 아마도 늘 품에 안고 다니던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립운동을 주님의 명령으로, 뜻으로 믿고 따라가셨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50장 10절 '빛이 없이 어둠 속을 걷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이 말씀은 할아버지의 삶과 겹쳐지면서 내게 '어둠을 만날 때'라는 시를 쓰게 하였습니다. 덕분에 '별빛을 품는 온정에 한 걸음씩 간다'라는 시구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별빛'이 주님이 주신 사명 또는 하느님이시라면 '온정'은 내 마음에 살아 계신 하느님 역사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두운 역사 위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한 걸음 한걸음 발자국을 남기는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며 동반하실 때 우리 삶은 비로소 목적을 지니고 의미를 담은 삶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유부단한 내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 현존에 대한 체험의 추구와 기도는 내 일생의 숙제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집중력을 길러 주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주님을 보려는 노력이 집중력을 높게 해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제와 함께하는 것이 기도랍니다.

살아 있다는 건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결실을 맺기 위해 고통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한 박자 쉬어가는 기도를 드리면서 하느님을 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노라면 주님의 말씀을 소리로는 못 듣지만 느낌이나 표징으로 알게 됩니다. 내 안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주님께 다가가려고 합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기도가 아닐까 생각하며 머물러 봅니다.

외할머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게 했습니다. 교회가 바치는 공적인 기도와 내면의 소리, 느낌들이 나를 주님께 조금씩 이끌어갑니다. 나의 세례명은 치릴로입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과 치릴로 신부님을 생각나게 하는 치릴로 기도문은 '거룩하신 아기 예수님 저를 축복하소서'입니다. 이 짧은 기도문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깊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주님의 평화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진호(치릴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