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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2020.09.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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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에게 영화는 삶의 동아줄 될 수 있어”
제주교구 이정규씨, 20여 년 영화 피정·포럼 통해 치유와 배움 나눠



"사람이 지식이 아닌 삶의 기본적인 가치, 갈망을 만나면 굉장히 진지해집니다. 영화를 통해 삶에서 기본이 되는 가치를 배우고 깨닫는 겁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는 것도 배우게 되죠."

20년 넘게 약물 중독 청소년과 노숙인, 재소자, 알코올 중독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영화로 말을 걸어온 이가 있다. 이정규(프란체스카, 64, 제주 중앙주교좌본당)씨는 20년 전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새샘터에서 약물에 중독된 청소년들 대상으로 영화 피정을 시작해, 제주 서귀포시에서 20~30대 청년들과 영화 포럼을 열고 있다. 2013년부터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노숙인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에서 매월 한 차례 영화 포럼을 열어 노숙인들에게 자활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아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 밖에 있으면서 감옥에 갇힌 사람보다 더 구속된 채 살아가고요. 영화를 통해 삶의 기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인내와 배려, 희망, 사랑, 용서를 배우는 거죠."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한 이씨는 2004년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에서 문화 영성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영화 포럼은 영화를 비평하거나 작품성을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다. 영화를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이들의 삶의 유형을 들여다보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한 후에 서로 인상적인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참석자들이 소감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면서 일종의 치유 효과가 나타난다.

이씨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누는 이들은 영화를 감상하며 '나도 좋은 일을 하고 싶었고,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삶에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곧 자신이 의미 있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 틀에서 벗어나는 영화는 거의 없다.

이씨는 "어둠 속에 갇혀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곳을 모른다"면서 "어둠에 갇힌 이들에게 빛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동아줄을 잡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봉헌회원이기도 한 이씨는 월간 「분도」와 월간 「성서와 함께」를 비롯해 '청소년 주보' 등에 영화 피정도 연재해왔다.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이들에게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우리'를 주제로 다룬 영화"라고 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지요. 우리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 국가와 교회가 우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 덕분에 살 수 있지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진부한 일상에서 생명을 살아내고, 살려내는 일은 놀랍게도 반짝거립니다. 이것은 보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면 모든 영화에서 다 보이거든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