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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2020.09.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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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수녀 중의 수녀 / 서복희
가르멜 봉쇄 수도원 방문은 내 일생 중 가장 큰 영광 중 영광이며 더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산(현재 밀양) 가르멜 봉쇄 수도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칸막이 저 깊은 안쪽, 침묵이 흐르는 그곳, 영원한 세계를 꽃피우는 그곳, 속세 사람들을 위해 인내의 희생으로 한평생 기도의 도구가 되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그곳.

흐트러짐 없는 언제나 단정한 이조의 여인 같으신 수녀!

주님께서 서 티토 신학생이셨던 하나밖에 없는 나의 오라버님을 통해 우리 집안에 보내 주시어 내 언니가 되어 준 이인숙 데레사 마르가리타 수녀님!

우리 만남은, 반백년을 거슬러 모두 합해도, 불과 24시간밖에 되지 않으나 가슴속에 늘 함께 있었던 터인지 한 지붕 아래서 평생을 부대끼며 살아온 혈육과 같은 언니!

찰나의 순간이 영원한 것임을….

수도원 허락 하에 가로막힌 창살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뵙는 순간, 아가 같은 수녀님의 큰 눈빛, 종소리 같은 맑은 음성, 내 안의 알 수 없는 오물이 말끔히 씻김을 받은 치유 은총을 입었다.

다음 날 아침 새벽미사 준비에 수녀님 눈길은 아래로 뜨시고 사뿐히 칸막이를 여닫으시는 모습, 미사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시는 아름다운 모습, 비록 칸막이 밖일지라도 함께 미사 봉헌함에 감격스러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사람들 기도 스승이신 자랑스러운 수녀님!

로사 축일에 소식 주실 때엔 두루마리 흰 종이에 살아 움직이는 달필과 명필, 하느님 사랑을 구구절절 넘치도록 시적으로 표현한 황홀함. 아우 해인 수녀님 시집과 정성스레 말린 장미 송이, 손수 만드신 엽서까지 보내 주시는 자상한 내 언니 수녀.

둘째 딸 아홉 살 되던 해 심한 알 수 없는 열병으로 병원 치료에도 호전되지 아니해 염치없이 수녀님께 기도를 청원 드렸다. 며칠 후 열이 내리고 회복되었다. 그 후 전해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곳 수녀님들과 함께 양팔을 높이 들고 밤이 늦도록 쾌유의 청원 기도를 바치셨다고….

가르멜 봉쇄 수도원 수녀님들의 정성 어린 기도에 기꺼이 응답하시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를 영원히 받으옵소서. 2017년 11월에 하느님께 불려 가신 언니 수녀님, 지금도 제 곁에 주님과 함께 계신답니다.

어느 동료 수녀님께서 내게 이인숙 데레사 마르가리타 수녀님은 이런 수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더우나 추우나 바람이 부나, 성당에서나 객실에서나 휴식 방에서나, 누가 보거나 말거나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자세의 여인. 기도하러 성당에도 1등, 요기하러 식당에도 1등, 청소하러 청소 구역에도 1등, 주방 일하러 주방에도 1등으로 나타나시는 만년 모범생. 하나를 꾸어 달라면 열을 공짜로 주시며, 이거 누구에게 필요하겠다고 생각되면 십 리라도 달려와 손에 쥐여 주고선 수줍게 물러가시는 넉넉하고도 섬세한 마음 소유자."

옛 수련장 시절, 한 가지 지적해 주시곤 상처받았을까 열두 번 어루만져 주시던 그 고우신 마음하며, 좋은 소식 들으면 그 기쁨 나누고파 온 집안 알리시곤 침묵 깼다고 고백하시는 순진한 소녀 같은 수녀님.

수도원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고달픈 수부 소임 때엔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 튼튼한 11번 자가용으로 늘 기쁘게 씽씽 달리시는 젊은 자매들 열도 못 당해 내는 용기 있는 수녀님.

청결과 정성으로 주님을 섬기는 제의방 소임 때엔 거룩한 제상엔 한 번의 실수도 용납 안 되니 점검, 또 점검하시곤 돌아서야 안심되는 완벽주의 수녀님.

축일엔 옥잠화와 해바라기, 그 어떤 소재도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꽃꽂이 선생님 정도가 아니라 예술가로 등장하시는 수녀시랍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복희(로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