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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2019.10.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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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성모 발현지, 매일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나는 땅
특별 기고 /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12일 밤 포르투갈 파티마 현지에서 전 세계 신자 25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파티마 성모발현 기념일 ‘로사리오의 모후 대성전 봉헌 기념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파티마성지 제공


 












 
▲ 염수정 추기경이 13일 파티마 성모 발현 102주년 기념 미사 퇴장 행렬 후 성모상에 친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 파티마 공식 일정을 마친 염수정 추기경이 로사리오의 모후 대성전에서 한국 순례단과 인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1917년 5월 13일~10월 13일 6회 성모 발현



파티마는 성모 마리아 발현지다. 포르투갈 중부 산타렝 주의 레이리아(Leiria)교구에 속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성모님께서 파티마의 세 어린이에게 발현하신 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성모성지가 되었다. 1916년 성모님 발현을 준비하기 위한 세 차례의 천사 발현과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성모님 발현이 있었다.



성모님은 세 어린이에게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로사리오 기도를 바칠 것을 당부하셨다. “나의 요구를 듣는다면, 러시아가 회개할 것이며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다.” 어린이들 앞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성모’라고 소개하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하늘에서 온 사람,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심시켜 주셨다고 한다.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매일 로사리오 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고, 다른 이들도 똑같이 하도록 전하라고 하셨다.



파티마는 이런 신앙의 신비가 드러난 곳이라 가톨릭 신자라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성지로 꼽힌다. 성모님 당부대로 파티마에는 로사리오 기도가 끊이지 않고,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자들 행렬이 이어진다.



파티마 성모 발현 기념일에 성모님 발자취를 다시 찾는 은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국 순례자 80여 명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님과 함께 파티마를 방문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와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가 함께 기획한 순례다.



파티마 순례단을 꾸리게 된 것은 재작년 레이리아-파티마 교구장 안토니오 마르토 추기경이 염 추기경에게 파티마 성모 발현 기념일 미사와 전례 주례를 공식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세 팀으로 구성됐다. 필자가 속한 팀은 반뇌와 루르드 등을 거처 12일 파티마 성지에 도착했다.



우리 팀은 아침 일찍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파티마를 향해 차로 약 5시간을 달렸다. 이동하는 동안 휴게소마다 파티마를 찾아가는 여러 나라 순례팀으로 북적였다. 성모님을 만나러 가는 설렘은 만국 공통이구나 싶었다. 파티마는 초입부터 큰 성지 분위기가 물씬 났다.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특히나 성모님 발현 기념일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드넓은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여러 나라에서 온 신자들로 가득 찼지만,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숙했다.



각기 다른 일정으로 한국에서 출발한 세 팀은 12일 파티마에서 상봉했다. 이국땅에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함께한 점심은 그야말로 친교의 식사, 코이노니아였다. 염 추기경님께서 미사를 집전할 때 한국 신자들은 목이 메었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일제 강점과 6ㆍ25 등 모진 고난을 겪고, 작은 영토마저 분단된 변방의 작은 나라의 교회가 이젠 유럽 교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파티마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우리 죄인을 위해 하느님께 대신 빌어주시는 성모님, 아, 우리 신앙의 어머니! 한동안 눈을 감고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이 땅에서 들려온 천사의 외침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참회하라, 참회하라, 참회하라!”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발현일 기념 미사



12일 어두운 밤에 이어진 촛불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말과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기도였지만 순례자들은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기도가 촛불과 함께 모여 하늘로 향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생각으로 똑같은 기도를 바치고 있다니 은총이 가득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싶었다.



발현 기념일 미사가 있는 13일 아침, 식당에서 한 자매와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다. 원순애(안나) 자매는 성지순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성당에서 20년 넘게 봉사하고, 가정에서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늘 주는 입장이었죠. 그러다 보니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어디에서 위로받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하루하루 다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순례를 통해 하느님께 사랑을 충분히 받았어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지치지 않고 더욱더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얻어갑니다. 루르드 성지에서 침수예식할 때 봉사자들이 저를 참으로 소중하게 대해준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순간 ‘성모님께서 그동안 나를 이렇게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셨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순례팀에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도 있었다. 서청주본당 이준서(마태오) 군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로사리오 기도와 장엄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순례지 미사 때마다 복사를 했는데, 그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마태오군은 성지순례에 참여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해서 오게 됐다. 순례를 준비하면서 어머니와 54일 동안 묵주의 9일 기도를 바쳤다고 했다.



13일 발현 기념일 미사는 염 추기경 주례로 봉헌되었다. 파견 행렬 때 성지 광장을 가득 메운 순례자 25만 명이 성모상을 향해 흰 손수건을 흔드는 장면은 마치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듯했다. 많은 사람이 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지순례는 관광이나 여행과는 분명히 다르다. 성지순례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성역을 순례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신앙이 한 뼘 성장한다. 이냐시오 성인은 자신을 순례자라고 했다. 나그네는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거나 여행 중인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상에서 덧없는 나그네 삶을 살지만 언젠가 그분과 함께할 ‘영원의 시간’을 생각하며 희망에 젖는다. 매일 순례 떠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불어 나의 삶 자리를 성스러운 땅, 성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청해본다. 기적은 우리 삶 곳곳에 있으며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