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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 한티 순교성지

한티 성지 순교자 묘역의 조 가롤로와 그의 가족 묘.한티 순교성지에는 모두 37기의 묘가 있다. 순교자 묘의 대부분인 33기는 무명 순교자의 묘지이다. 신원이 밝혀진 순교자의 묘는 다음의 4기이다.


조 가롤로와 그의 가족(부인 최 바르바라와 누이동생 조 아기)

조 가롤로는 상주의 구두실이 고향으로 그의 집안은 1839년 이래 정권을 장악했던 풍양 조씨로, 그들은 1839년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는 기해박해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으므로 문중이 얼마나 천주교인을 미워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 가롤로가 천주교를 믿었으므로 그는 문중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친척들이 집을 불살라 버렸고 정든 고향에서도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조 가롤로와 그의 가족들은 3년 동안 충청도 황간과 상촌 등지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칠곡 한티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숯을 굽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한티로 피난 오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주일이면 신자들과 함께 자기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 생활에 충실하던 그는 신자들을 지도하는 회장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한티 부락에 열심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출처 : 한티 성지 홈페이지]


서태순 베드로(徐泰淳, 1823-1867년)

서태순(徐泰淳) 베드로는 1823년 충청도 청풍에서 서치보(徐致輔)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기해박해 무렵 문경 여우목에 살다가 1840년 부친이 선종하자 충주 중원으로 이사했으며, 박해가 잠잠해지자 대구지역으로 이사를 하였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잡혀 대구 경상감영으로 끌려가 여섯 달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심한 고문을 받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지난날의 잘못을 통회하고 참된 신앙생활을 위해 문경 한실 교우촌에 가서 살다가 1866년 가을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문경을 거쳐 상주로 이송되어 3차례의 신문과 많은 곤장을 맞았으며, 1867년 1월 23-24일 사이 옥에서 목 졸려 순교하였다. 순교자의 시신은 부인 김 데레사와 조카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및 맏형 서인순의 도움으로 한티로 옮겨졌다. [출처 : 한티 성지 서태순 베드로 순교자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