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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계약의 궤 이야기(1사무 4,1ㄴ-7,1)

672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08-13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계약의 궤 이야기 1(1사무 4,1ㄴ-7,1)

 

 

우리는 지난번 순례 때 사무엘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무엘과 탄생, 성장 이야기와 사무엘의 판관직을 서술하는 이야기 사이에는 사무엘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가 섬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1사무 4,1ㄴ-7,1). 이것이 바로 ‘궤 이야기’입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2사무 6장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였습니다. 1사무 4,1ㄴ-7,1과 2사무 6장을 연결해서 읽으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긴 계약의 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온 후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된 과정을 서술하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한 덩어리였던 이야기가 사무엘기 안에 포함되면서 2사무 6장은 따로 떨어져서 다윗 임금 시대 때 언급됩니다. 

 

궤 이야기의 배경은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 사이의 전쟁입니다. 에벤 에제르 부근에서 벌어진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군 사천 명가량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세가 기울자 실로에서 계약의 궤를 모셔오기로 합니다. 그래서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실로 성소에서 계약의 궤를 전쟁터로 모셔왔습니다. 계약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이스라엘은 함성을 질렀고, 이런 상황을 파악한 필리스티아군은 이제는 전쟁에서 졌다고 생각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참패하고 계약의 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호프니와 피느하스는 전사하였고, 계약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마저 놀라서 죽고 말았습니다. 또 피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을 낳고 산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 집안의 이런 비극을 두고 성경의 역사가는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 신탁이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궤를 빼앗은 필리스티아인들은 주님의 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곧 다곤 신상이 넘어져 부서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또 아스돗의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염병은 선페스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병은 쥐벼룩에 의해 전염되며, 벼룩에 물린 부위에 가까운 림프절이 붓고 아픈 증상이 나타납니다. 2~3일 안에 치료하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마는 아주 위험한 전염병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그들은 계약의 궤를 갓으로 옮겼고, 그곳에서도 전염병이 퍼지자 다시 에크론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에서도 전염병이 퍼지자 필리스티아인들은 이 일이 계약의 궤와 연관성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이 그들을 치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약의 궤를 빼앗은 지 7개월 만에 궤와 함께 보상제물로 금으로 된 종기 다섯 개와 금으로 만든 쥐 다섯 개를 만들어 수레에 싣고 이스라엘 지방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에서 필리스티아인들이 만든 종기와 쥐가 바로 이 병이 선페스트임을 알려줍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의 사제들과 점쟁이들은 이 일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하신 일인지 우연히 발생한 일인지 확신하지 못하였기에 궤를 실은 새 수레를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가 끌게 합니다. 어미 소는 본능적으로 젖먹이 새끼에게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만약 이 어미 소들이 젖먹이 새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이스라엘 지방을 향해 간다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있음을 확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이 소들은 곧장 이스라엘 지방인 벳 세메스 쪽을 향해 갑니다. 당시에 밀 수확을 하던 벳 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밭에서 멈춘 궤를 보고 기뻐하며 맞이하고, 수레를 끌고 온 소를 잡아 주님께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것을 보고 필리스티아의 다섯 통치자들은 에크론으로 돌아갔습니다.

 

성경의 역사가는 필리스티아 지방에 일어난 이 모든 일이 “주님의 손”이 하신 일임을 일곱 번이나 언급합니다(1사무 5,6.7.9.11; 6,3.5.9). 필리스티아인들이 주님의 궤를 빼앗은 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무력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계약의 궤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지 않은 것일까요? [2023년 8월 13일(가해) 연중 제19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계약의 궤 이야기 2(1사무 4,1ㄴ-7,1)

 

 

우리는 지난 순례 때 궤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궤 이야기의 결론을 다루지 못하였기에 여기서 좀 더 궤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계약의 궤를 뺏어간 필리스티아인들을 흑사병으로 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궤를 돌려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계약의 궤가 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 것일까요? 왜 그들은 전쟁에 패하고 말았을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자 합니까?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도 결국에는 바빌로니아의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계약의 궤를 빼앗긴 사건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도 하느님의 무력함을 의미하지 않음을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어떤 장소나 물건이 자동적으로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만약 이런 장소나 물건이 이스라엘을 지켜준다면 이스라엘은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게 될 것이고, 그 장소와 물건을 가치있게 만드는 하느님께 온전히 시선을 두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어떤 장소나 물건에 국한될 수 없는 분이시며, 자유로운 분이십니다. 우리가 향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하느님이십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또한 이런 가르침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계약의 궤는 이제 필리스티아 지방을 떠나 벳 세메스에 도착했습니다. 벳 세메스는 유다와 필리스티아의 경계 지역에 있는 작은 성읍으로 유다의 남쪽에 위치하며,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계약의 궤를 기뻐하며 맞이했던 이곳 벳 세메스 사람들은 주님께 번제물을 바친 후에 불경하게도 주님의 궤 안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왜 그들이 주님의 궤 안쪽을 들여다보았는지 그 이유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일흔 명과 오만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오만 일흔 명이라 하지 않고 일흔 명과 오만 명이라고 한 것은 ‘오만 명’이 이후에 첨가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일흔 명이 죽은 것으로는 하느님의 거룩함을 침범한 이 죄의 위중함을 말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후대의 편집자가 오만 명을 첨가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벳 세메스 사람들은 계약의 궤를 두려워한 나머지 키르얏 여아림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궤를 모셔 가게 하였습니다. 키르앗 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읍입니다. 이때부터 계약의 궤는 키르얏 여아림에 20년간 머물게 됩니다. 주님의 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고, 그의 아들 엘아자르가 그 궤를 지켰습니다.

 

이 계약의 궤는 다윗이 임금이 되고 난 후 예루살렘의 천막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며(2사무 6장 참조),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에는 성전의 지성소에 모셔 놓게 될 것입니다. 계약의 궤 이야기가 형성된 이유에 대해서 독일 학자인 로스트는 본래 궤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로, 계약의 궤가 실로 성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된 것을 경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미국 학자인 켐벨은 이 이야기가 예루살렘이 실로 대신 하느님의 성소로 선택된 이유를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독립적으로 형성되었던 궤 이야기가 현재 사무엘기의 문맥에 포함됨으로써 궤 이야기는 앞으로 이루어질 성전의 건축과 그 성전의 의미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의 파괴 및 국권의 상실은 하느님의 무력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의 결과임을 거듭하여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겼던 계약의 궤가 다시 이스라엘에 돌아온 것처럼, 성전의 파괴와 국권의 상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파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2023년 8월 27일(가해) 연중 제21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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