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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 구약성경 | 2사무  14,30  그러자 압살롬은 자기 종들에게, “보다시피 보리를 심어 놓은 요압의 밭이 내 밭에 잇닿아 있다. 가서 거기에 불을 놓아라.” 하고 일렀다.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놓았다. 압살롬의 지혜
배주야 (egobjy) 2024-10-03
이동 | 구약성경 | 이사  58,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나를 위해서 단식하고 고행하며 주님을 탓한다. 정녕 주님을 위한 것인지 선별하고 묵상하며 행동하자.
이채희 (jpanna301) 2024-09-18
이동 | 구약성경 | 이사  57,19  나는 입술의 열매를 맺어 주리라. 멀리 있는 이들에게도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도 평화, 평화!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리라. 입술의 열매로 나에게도 남에게도 평화를 주자. 추석은 가족과!
이채희 (jpanna301) 2024-09-17
이동 | 구약성경 | 이사  49,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주니의 눈에 소중하고 나의 힘이신 하느님과 오늘도 삶 속으로 걸어간다.
이채희 (jpanna301) 2024-09-17
이동 | 구약성경 | 이사  12,2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 신뢰하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나에게 힘이되고 굳셈과 구원이 되어 주시는 주님과 세상 속에 머무릅니다.
이채희 (jpanna301) 2024-09-09
이동 | 구약성경 | 이사  8,17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리라. 야곱 집안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신 분 나는 그분을 고대하리라. 주님을 기다리는 이 삶이 충만하길 기도 드립니다.
이채희 (jpanna301) 2024-09-09
이동 | 구약성경 | 이사  4,2  그날에 주님께서 돋게 하신 싹이 영화롭고 영광스럽게 되리라. 그리고 그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에게 자랑과 영예가 되리라. 야훼께서 돋게 하신 싹을 틔우고 가뀌보자. 240907토
이채희 (jpanna301) 2024-09-07
이동 | 구약성경 | 잠언  12,16  미련한 자는 불쾌함을 바로 드러내지만 영리한 이는 모욕을 덮어 둔다. 포도주를 그릇에 넣는 것은 찌꺼기가 가라앉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를 그릇 속에 넣어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가라앉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불평하고 그릇이 싫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찌꺼기가 떠돌아다니고 그럴수록 그 오해의 그릇에 머무는 시간만 길어질 뿐입니다. 우리가 오해를 받을 때 원망하고 해명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깊은 늪 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오해에 대해서 변명하지 말고 묵묵히 참고 기다리면서 주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김성순 (sohwassk1) 2024-07-10
이동 | 구약성경 | 다니  11,36  임금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교만스레 자신을 들어 높이며 자기가 모든 신보다 위대하다고 여길뿐더러, 신들의 하느님을 두고 끔찍한 말까지 해 댈 것이다. 이렇게 그는 진노의 때가 다하기까지 성공을 거두리니, 결정된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황제
원성두 (samuel4u) 2024-07-05
이동 | 구약성경 | 다니  11,35  현명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이렇게 쓰러지면서, 마지막 때가 되기까지 다른 이들이 단련되고 정화되고 순화되게 할 것이다. 아직 정해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마카비
원성두 (samuel4u) 2024-07-05
이동 | 신약성경 | 히브  5,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1. 창세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댁 창14장에 보면 엘람 왕 그돌라 오멜이 자기를 섬기는 이웃 나라들이 자신을 배신한 일에 격분하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나라를 쳐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이 싯딤 골짜기에서 싸울 때 소돔과 고모라 왕이 그에게 패하여 병사들은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왕들은 겨우 도망했습니다. 엘람 왕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때 그 성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도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같은 롯의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온 용사 318명을 거느리고 단숨에 쫓아가 엘람 왕을 기습했습니다. 이 기습전에서 대승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자기 조카 롯과 모든 사람들과 재물도 빼앗아 올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올 때 소돔 왕이 친히 아브라함을 영접하러 마중 나왔으며 살렘왕 멜기세댁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이 때 멜기세댁이란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멜기세댁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했습니다. 그의 축복은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너의 손에 부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할 지로다'고 했습니다. 2. 멜기세댁의 신분 멜기세댁의 신분을 보면 그는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살렘이란 말은 평강이란 뜻입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진바 없지만 지금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도시로 아마도 그 지경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살렘이란 지역을 지배하는 왕의 신분으로 있었으며 아브라함에게도 알려지고 그도 아브라함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면 신분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노략물의 십분의 일을 바칠 이유도 없었거니와 멜기세댁에게 축복 기도를 받지도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풀어보면 멜기란 말은 왕, 세댁이란 말은 의란 의미로 멜기세댁이란 의의 왕이란 뜻인 것입니다. 그의 신분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그를 살렘의 왕이라고 했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했습니다. 히7장을 보면 멜기세댁은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로 나와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었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11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댁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설명하는데 반드시 성경에 등장해야 할 인물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그의 제사장직에 대한 성경적인 증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그의 직분에 대해 증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의 속죄 제물이 되셨다면 그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그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할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반드시 레위 지파의 자손 중에서 나와야 하는데 유다 지파이신 예수님이 무슨 성경적 근거로 대제사장 직분을 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일은 그가 유다 지파에 속하셨으며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으실 수 있지만 그가 대제사장이 되실 수 없는 것은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경에 멜기세댁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속죄제물과 제사장 직에 대하여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멜기세댁이 등장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레위가 아니라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제사장이 될 사실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까? 멜기세댁은 레위 자파도 아니요 아론의 자손도 아닙니다. 아론이나 레위란 인물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을 만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의 직분은 반드시 레위지파의 자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멜기세댁이란 사람이 이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사장은 동시에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댁은 살렘 왕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댁의 반열을 따라 제사장이 된 예수님은 멜기세댁처럼 왕과 제사장이 동시에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으시기 위해 율법적인 대제사장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창세기에 멜기세댁을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신분은 멜기세댁과 같이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그에게 간구하며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3. 멜기세댁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히브리서 7:1-10) 1) 멜기세댁이란 이름에 담겨진 메시야적인 의미 멜기세댁이란 이름에는 메시야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멜기세댁이란 이름이 의의 왕인 것처럼 사32:1절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의로 통치하는 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장차 의로 통치할 왕'이란 그리스도가 장차 만 왕의 왕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실 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이 예언은 유대인이 소망하고 있는 메시야왕국(천년왕국)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댁이란 이름은 그 이름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직분에 대한 예언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직분은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살렘이란 평화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살렘 왕이란 평화의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사53: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또 사9장에서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에서 '평강의 왕'이란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신 평화의 왕이시며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또한 멜기세댁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에 대하여 히7:26절에서 '하늘보다 높이 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멜기세댁은 그의 이름이나 그의 직분 등 모든 일에 있어서 다 그리스도의 예표 인물로서 적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묘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멜기세댁은 그리스도의 높으심을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멜기세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 가를 보여 주셨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에 대하여 기대와 소망은 가졌지만 그 분의 위치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모세정도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 각하느냐 뉘 자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한 가지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하시니 그들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셨지만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멜기세댁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왕과 제사장이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멜기세댁의 신분이 마치 수수께끼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했습니다. 방불하다는 말은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멜기세댁이 아담의 자손이 아니란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치고 아담의 자손이 아닌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멜기세댁은 천사였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천사가 왕으로 사람을 다스리며 제자상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는 일은 성경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멜기세댁의 인간적인 계보가 전혀 없다는 데서 한 말입니다. 멜기세댁이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족보가 없어야 합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성경에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멜기세댁을 성경에 등장시키실 때부터 그의 족보를 기록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마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혈통관계를 계보로 만든 것이지 그 분은 원래가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족보에 해당되실 분이 아니십니다. 멜기세댁은 육신적인 예수님의 예표가 아니라 그의 왕권과 제사장 직분에 대한 서열로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인간적인 족보가 성경에서 삭제되었으며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등장시킨 것입니다. 결론 : 멜기세댁의 제사장 직분은 성경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넘겨 드림으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예표 인물로서의 성경적인 사명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멜기세댁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짐으로 우리 주님의 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놀라운 지식을 갖게 되며 우리의 신앙이 장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목양연가]
김칠태 (htkct) 2024-11-05
이동 | 신약성경 | 콜로  3,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오늘날에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동유럽 남부 영토, 크림반도를 기반으로 한, 서부 스키타이인들은 왕족 스키타이라고 알려진 권력 계층들의 지배를 받았다. 서부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연결하는 거대한 무역로인 비단길을 만들고 통제했으며, 이 문명들의 번영에 기여했을 것이다. 정착한 금속세공업자들은 스키타이인들을 위한 휴대용 장식품들을 만들었다. 이 장식품들은 금속 재료에서 주로 살아남았고, 독특한 스키타이 미술을 형성했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인들은 킴메르인들과 같이 캅카스산맥을 넘어서 중동 지역을 자주 약탈했고, 중동의 정치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원전 650?630년에, 스키타이인들은 이란고원 서부의 메디아를 잠시 지배했고, 이집트 경계까지 힘을 뻗쳤다. 메디아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후, 스키타이인들은 중동 지역에 대한 간섭을 계속했고, 기원전 612년 니네베 약탈에서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스키타이인들은 그 후에 아케메네스 제국과 잦은 분쟁에 연루되었다. 서부 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왕국에 큰 패배를 당했고 그 후에 중앙 아시아에서 온 이란계 민족 사르마티아인들에게 서서히 정복되었다. 아시아 스텝의 동부 스키타이인들 (사카인)은 기원전 2세기에 월지, 오손, 흉노의 공격을 받았고, 이들의 상당 수가 남아시아로 이주하도록 유발이 되어, 그곳에서 스키타이인들은 인도-스키타이이라고 알려졌다.
김칠태 (htkct) 2024-09-11
이동 | 신약성경 | 콜로  3,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스키티아(고대 그리스어: Σκυθ?α)는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폰토스-카스피해 스텝 지대에서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왕국이다.
김칠태 (htkct) 2024-09-11
이동 | 신약성경 | 필리  1,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바오로와 티모테오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필리피의 모든 성도에게, 그리고 감독들과 봉사자들에게 인사합니다. 그리스 빌립보(필리피)는 현재 고대 유적으로만 볼 수 있는 곳으로 사도 바울이 가장 먼저 방문했던 마게도니아의 성읍으로 현재의 지명은 필리피로 그리스 북동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김칠태 (htkct) 2024-09-04
이동 | 신약성경 | 마태  1,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예수그리스도게서는 이렇게 탄새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이 인태한 하실이 드러났다.
김순분 (kbs12249) 2024-09-02
이동 | 신약성경 | 마태  1,25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24. 8. 26. 읽었다 여지껏 배운 말씀들이 조금은 알수 있는듯
김영업 (Kyu1961) 2024-08-27
이동 | 신약성경 | 마태  18,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김진수 (akxodh) 2024-08-11
이동 | 신약성경 | 마태  18,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수실 것이다.
김진수 (akxodh) 2024-08-11
이동 | 신약성경 | 로마  15,12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이의 뿌리에서 줄기가 돋아나리니 그가 일어나 민족들을 다스리고 민족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리라.” 이사이- 다윗의 아버지
김칠태 (htkct) 2024-07-23
이동 | 신약성경 | 로마  12,20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본문은, 구약성경 잠언 25장 21-22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도움을 주고, 또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대하는 것은, 악이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원수가 궁핍하여 곤경에 빠졌을 때는, 선행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 승리의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머리 위에 불타는 숯을 쌓는 것’이라는 말이다. 구약성경 잠언 25:22에,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다”고 했다. 이 말씀에 있어서,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다는 것은, 사람의 맨머리 위에 숯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머리 위에 이고 온, ‘화덕’ 안에 숯불을 차곡차곡 담아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옛날 유대인들은 요리가 끝난 후에는, 화덕의 불이 꺼지지 않게 약한 불씨를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날 아침에 남은 불씨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구약성경 호세아 7:6에 잘 설명되어 있다. 즉 “그들은 숨어서 기다릴 때에 자기들의 마음을 화덕과 같이 예비하였도다. 그들의 빵 굽는 자가 밤새 자다가 아침에 불꽃같이 그것에 불을 붙이매(흠정역)”라고 한 바와 같다. 이처럼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씨를 꺼뜨릴 경우, 그 사람은 머리 위에 화덕을 이고 다른 집을 찾아가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찾아간 집마다 모두 거절을 당했을 때, 부득이 원수지간인 사람에게 요청할 처지에 이를 수도 있다. 이때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 그를 매정하게 대하지 말고, ‘원수가 머리에 이고 온 화로에 숯불을 쌓아주라’고 말씀했는데, 이러한 배려야말로, 원수로 하여금 먹이고 마실 수 있게 해 주는 것과 같은 행위이며, 하나님은 그런 선행에 대해 보상하신다는 말씀이다
김칠태 (htkct) 2024-07-23
이동 | NAB | Gn  1,1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김효선 (naimam) 2024-10-30
이동 | NAB | Gn  1,1  First Story of Creation First Story Creation
김효선 (naimam) 2024-10-30
이동 | NAB | Gn  1,1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김귀순 (botanist) 2024-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