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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다윗 이야기: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 12,7) - 다윗이 주님께 죄를 짓다

675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09-18

[다윗 이야기]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 12,7) - 다윗이 주님께 죄를 짓다

 

 

아홉 번째 이야기 : 2사무 11-12장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다윗이지만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모든 일이 잘 되자 점차 느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11,1-2)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란 전쟁이 가장 활발했던 봄철을 의미한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암몬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10장) 이제 해를 넘기며 끌어온 이 전쟁을 끝마쳐야 했다. 그런데 다윗은 요압 장군과 부하들이 암몬의 강력한 요새 성읍을 공격하는 긴박한 상황에 참여하지 않았다. 저녁때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을 거니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분명 필리스티아를 물리치던 용사 다윗 임금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전해진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던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여인을 통해 인간 다윗의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이 거침없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윗의 명석함은 부하의 아내와 간음한 죄를 덮기 위한 모략, 곧 충실한 군인 우리야를 전사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주님께 무엇이든 묻고 행하던 다윗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죄의 속성은 주변에 확산될 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 침착한 어둠을 만들어 낸다. 스스로도 뭘 하는지 모르는 길로 계속가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다윗이 한 짓이 주님의 눈에 거슬렸다.”(11,27)고 명확히 지적한다.

 

다윗을 대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흥미롭다. 그분은 예언자 나탄을 통해 다윗에게 손님을 대접하려고 가난한 이의 소중한 암양을 대신 잡아올린 탐욕스런 부자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주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12,5)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12,7)

 

옳고 그름의 판단에 있어 다윗의 답변은 명료했고 임금다웠다. 화를 내며 판결을 내리는 다윗이 낯설다. 타인의 잘못에 분노할 때 자신은 그런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기 쉽다. 다윗은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 그것을 직시해야 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는 나탄의 차분하고 공손한 한마디는 사실 정수리에 꽂히는 칼날이었다. ‘말 잘했다! 니가 바로 그런 죽일 놈이야!’ 다윗은 스스로에게 침을 뱉은 셈이다.

 

나탄을 통해 장차 다윗의 집안에 일어날 칼부림과 재앙이 선포되는데, 여기서 주님의 꾸짖음은 다윗에게 베푼 은혜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래도 적다면 이것저것 너에게 더 보태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12,8-9) 죄인을 대하는 하느님의 방식은 먼저 당신과 함께했던 ‘은혜로운 일들’에 대한 기억에 있다. 그 관계가 깨진 것이 죄를 대하는 핵심 문제이기에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네가 나를 무시하고’가 반복되면서 간음이나 살인보다 근원적인 차원, 곧 ‘하느님이 안 계시는 듯’ 행동한 다윗의 처신이 문제임을 짚어낸다. 나탄이 전하는 준엄한 하느님 말씀 앞에서 다윗은 그야말로 ‘알몸’이 된다.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라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12,13-14)

 

성경에서 ‘죄의 고백’과 ‘주님의 용서’가 이처럼 즉각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지는 예가 있을까? 단 한마디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라는 고백으로 죄를 용서받다니 아마도 다윗은 이 순간에 눈이 열리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했을 것이다. 그의 죄는 상당하다. 간음, 거짓말과 속임수, 살인 계략은 그동안 다윗이 쌓아 왔던 명성과 인품을 다 허물어뜨렸다. 인간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하느님께 꼭 붙어 있지 않으면 어디로 굴러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다윗은 아담과 하와, 카인 등 숨거나 변명, 핑계로 알몸을 가리려고 했던 이들과 달랐다. 고해성사만 하더라도 자기 죄를 고백하다가 어느덧 다른 이의 죄 고백으로 슬쩍 넘어가는 일도 흔하다. 이처럼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단순한 인정이 사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간 사회에서 경험하는 금지, 비난, 처벌이라는 겹겹의 무거움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가려온 까닭이다. 다윗은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 거리를 뛰어넘고 되돌아갈 만큼 하느님께 속해 있었다. 그 힘에서 나올 수 있었던 고백으로 그는 용서를 얻는다. 혹자는 너무 싱겁게 용서받는다고 할지 모른다. 자신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일 것이다. 다윗의 단식과 탄원에도 불구하고 예언대로 밧 세바에게서 낳은 첫 아기는 죽었다. 다윗은 이를 받아들인다.

 

“다윗은 자기 아내 밧 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밧 세바가 아들을 낳자 다윗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다. 주님께서는 예언자 나탄을 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이라 하여 그의 이름을 여디드야라고 부르게 하셨다.”(12,24-25)

 

‘다윗’은 ‘사랑받는 자, 사랑스런 자’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 ‘여디드야’는 ‘야훼의 사랑받는 이’라는 뜻으로 ‘야훼’와 ‘다윗’의 이름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다윗에 대한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약속을 재확인해 준 것이다.

 

과오가 드러날 때 변명으로 일관했던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이 떠오른다.(1사무 15,20-21) 주님께서 사랑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2)

 

[월간빛, 2023년 9월호,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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