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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여푼네의 아들 칼렙

680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11-21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여푼네의 아들 칼렙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헤브론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시절 ‘칼렙’이 상속재산으로 받은 성읍입니다. 유다 지파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칼렙의 이름 뜻은 ‘개’입니다. 사람 이름에 ‘개’를 붙이는 일이 흔치 않고 성경에서도 개가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로 등장하지 않기에(시편 22,17; 마태 7,6 등) 그 이름이 무척 낯설지만, 이는 그가 지닌 ‘충성스러움’을 반영하려 한 것 같습니다.

 

칼렙은 이집트 탈출 뒤 모세가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파견한 정찰대의 일원이었습니다.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열두 명의 대원(민수 13,2)은 가나안이 좋은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그곳 주민들이 힘센 나필족이라며 백성의 의기를 꺾어 놓습니다(25-33절). 이때 칼렙과 여호수아가 나서 계획대로 가나안을 정복해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백성은 정찰대 대다수에 부화뇌동하여 가나안 진입을 포기합니다. 그 결과, 주님의 약속을 불신한 이집트 탈출 1세대는 광야에서 죽을 운명을 맞게 되고(14,34-35), 칼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고(신명 1,38) 칼렙은 상속재산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민수 14,24; 신명 1,36).

 

칼렙이 받은 약속이 실현되는 과정은 여호 14-15장에 나오는데요, 특히 여호수아기에서는 가나안 땅의 분배에 관해 서술할 때(14,6-19,51) 칼렙의 이야기를 맨 앞에 놓았습니다. 아마도 그가 하느님의 약속대로 땅을 차지했음을 밝히고, 그를 백성이 지녀야 할 모습의 모범으로 제시하려 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칼렙은 장장 사십오 년 동안(14,10) 믿음을 잃지 않고 기다려 약속의 실현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여호 14,2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제비를 뽑아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만, 칼렙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한 땅을 청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그것을 획득했습니다. 이미 아낙족이 살고 있던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차지한 것입니다(12절). 그런데 이런 칼렙이 본래 이방인이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칼렙은 여호 14,6.14 등에서 “크나즈인”으로 소개됩니다. 크나즈인은 예부터 가나안에 살던 민족인데(창세 15,19) 에돔, 곧 에사우의 후손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창세 36,11.15.42; 1역대 1,36.53). 이들 가운데 칼렙의 집안은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로 합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출신 배경에도 칼렙은 하느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함으로써, 마지막까지 주인을 따르는 개의 충성스러움을 상기시킵니다. 그것은 가히 성조 아브라함도 능가하는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백 살이 될 때까지 자식을 두지 못하자 아들을 약속하신 하느님 말씀에 웃으며 이스마엘이라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창세 17,17-18). 헤브론에서는 이방인이던 칼렙이 한결같은 믿음으로 유다 지파의 지도자이자 백성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과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1월 19일(가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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