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네 번째 이야기, 바빌론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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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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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네 번째 이야기, 바빌론 유배
기원전 587년, 마침내 예루살렘은 함락됐다. 약속의 땅은 ‘세속화’되어 버린 백성들을 위한 땅이 아니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과 더럽혀진 성전을 떠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님의 영광이 성전 동문 쪽으로 나와 그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커룹들을 타고 성전을 떠나신다(에제 10장 참조). 거룩하지 못한 백성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실 곳은 없다. 그들이 정화되고 자신의 거룩함을 되찾아야, 하느님은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 예언자는 외친다.
그러나 사실 지나고 보니 유배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해 백성들은 정화되었고, 변화되었다. 속됨에 찌들었던 자신들의 삶을 통회하며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느님의 손길은 여전히 그들을 이끌고 계셨던 것이다. 유배지에서 제국의 압력 없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음은 그들에겐 행운이요 하느님의 보살핌이었다. 제한적이었지만 그들은 어느 정도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전통에 따라 자신의 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었으며, 함께 모여 하느님을 섬길 수 있었다. 이 모임 장소를 그리스어로 ‘시나고게(회당)’라고 한다. 바빌론이라는 거대한 문화와 도시 속에서도 백성들이 길을 잃지 않고 ‘거룩함’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모임 덕분이었을 것이며, 나아가 이곳에서 그들을 이끌었던 예언자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특히 에제키엘과 제2이사야의 역할은 위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유배 온 백성들은 과거를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았던 시간들,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살았던 자신들의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예언서가 쓰이고, 신명기계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편집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성경은 참 슬픈 책이다. 이는 참담한 현실과 후회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 회고록이며 참회록이다. 그들은 이제야 깨닫게 된 교훈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다시 율법으로 무장하여, 그 길에 따라 살리라고. 그렇게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 ‘거룩한’ 백성이 되면, 다시 하느님께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 주시리라. 그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들은 달라졌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나안 문화에 젖어 ‘거룩함’을 잃어버리던 줏대 없는 백성이 아니었다. 사실 바빌론의 문화는 가나안 문화에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스 역사학자였던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을 세계에서 가상 웅대한 도시였다고 말하며 바빌론 성벽의 총 둘레는 72km나 되었다고 기록했다. 아파트도 없는 그곳에 15만 명이 모여 살았다. 신전은 너무나 웅장해서 하느님의 집은 초가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의 최고신이라는 마르둑이 대체 얼마나 위대해 보였을 것인가? 더구나 그곳엔 고대 근동의 수많은 민족들이 뒤섞여 살았다. 제각기 자기 문화를 선보였고, 자기들의 위대한 신들의 이야기를 떠들며 백성들을 현혹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련을 겪은 이 백성은 이미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유혹의 손길이 그들을 건드릴수록 그들은 더욱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되었다. 안식일이면 여지없이 회당으로 모였다. 율법과 예언은 그들을 이끌고 지켜주었다. 수많은 민족들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더욱 자신의 색깔을 찾아내고 있었다. 남다른 백성, ‘거룩함’의 회복이다. 이제야 그들은 하느님 백성다워지고 있었다.
[2023년 11월 26일(가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원주주보 들빛 4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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