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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향백나무

684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12-26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향백나무

 

 

성경에서 나무는 왕국 또는 왕조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1)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햇순”과 “새싹”은 “이사이의 그루터기”인 다윗 왕실에서 나올 미래의 임금을 상징합니다. 특히 향백나무(체드루스)는 왕국과 왕조의 상징으로 자주 쓰였는데요, 원산지는 이스라엘 북쪽에 자리한 레바논입니다.

 

레바논은 ‘하얗다’라는 뜻으로 눈 덮인 모습을 반영한 지명입니다. 향백나무는 이런 추운 지방에서 자라므로 곧고 질겨 예부터 훌륭한 건축재였습니다. 현재 생존하는 나무가 천 년 이상 되었다고 하니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이사야가 “레바논의 영광”(이사 35,2)이라고 칭한 이 나무는 목재로도 좋지만, 진과 기름엔 독특한 향이 있어 미라 방부제나 향수로도 쓰였습니다. 그래서 레바논 숲은 나무가 부족한 주변 나라에게 매우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천오백 년 동안이나 레바논의 침엽수를 가져다 배의 건조, 신전과 성문 등의 건축에 썼고, 기원전 12세기부터는 아시리아도 목재를 얻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성경에는 기원전 701년 유다 왕국을 공격한 아시리아의 산헤립 임금이 레바논 산지를 황폐화한 사건이 나오는데요, 이때 산헤립은 레바논의 나무들을 베어 산 정상까지 나아갔다고 떠벌립니다(2열왕 19,23).

 

레바논 숲의 소유주가 티로일 때, 티로와 돈독한 관계에 있던 다윗과 솔로몬은 향백나무로 궁전을 지었고, 솔로몬은 성전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2사무 5,11; 1열왕 5,19-24; 7,2-3). 궁전과 성전의 외벽은 돌로 만들지만 내벽과 천장은 향백나무를 써서 단단하고 윤이 나게 꾸몄던 것입니다(6,15). 그 이후부터 향백나무는 다윗 왕실의 상징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종종 다윗 왕실을 향백나무에 견주며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예레 22,23; 에제 17,3.12 등). 그렇다고 향백나무가 긍정적인 의미만 지녔던 건 아닙니다. 이사 2,12-17에는 오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향백나무와 참나무 위로 주님의 날이 닥치면 세상의 교만이 심판 받으리라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왕국과 왕조를 상징하는 나무 모티프는 신약성경에까지 이어져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영됩니다. 나무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겨자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마태 13,31-32 등). 다시 말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라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향백나무와 달리, 예수님의 나무는 풀처럼 연약하지만 옆으로 옆으로 자라며 온 들을 가득 채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낮은 자들까지 감싸 안으신 그분처럼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목수의 아들이지만, 당신 모습처럼 풀보다 조금 더 클 뿐인 겨자에게서 하늘나라가 드러나리라는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고대근동에서 많이 사랑받은 향백나무 숲은 안타깝게도 오랜 벌채로 인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천천히 자라는 나무라 복구가 쉽지 않지만, 회복을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레바논 국기에도 들어가 있는 향백나무는 과거 그곳의 풍요롭고 찬란했던 모습을 떠올려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2월 24일(나해) 대림 제4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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