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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요나서

686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06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요나서

 

 

요나서 1장 1절을 보면 요나는 아미타이의 아들로 소개가 됩니다. 2열왕 14장 25절에 따르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는 예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절(BC 787-747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요나서에서 요나가 북이스라엘이 아닌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에서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수행한 것으로 보면 요나서에서 말하는 요나가 열왕기 하권에서 말하는 요나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요나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나 문체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면 요나서가 작성된 시점은 예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점이 아닌 훨씬 후대로서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페르시아 시대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요나서는 열왕기 하권에서 말하는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하던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라는 인물을 채택해서 BC 5세기경, 즉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에서 에즈라-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을 재건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됩니다.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더이상 왕정국가의 형태를 지닐 수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서 민족적이며 종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박차를 가했으며,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이민족을 향한 배타적인 태도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요나서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는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은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니네베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이르십니다. 하지만 니네베는 거친 폭력의 도시이며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수도였기에 요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주님을 피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먼 곳으로 알려진 타르시스로 향합니다. 하지만 항해 중에 폭풍을 만나게 되고, 이를 피하고자 배에 탄 사람들이 각자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뱃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누구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닥쳤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요나가 하느님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희생제물로 바다에 내던지게 됩니다.

 

2장에서 요나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과 밤을 보내면서 목숨을 구하게 되고 하느님께 회개의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한 요나는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3장은 니네베에 도착한 요나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모습과 이에 대한 니네베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줍니다. 요나는 니네베에 가서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라고 선언합니다. 충격적인 선언에 임금을 비롯한 니네베의 모든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회개를 상징하는 자루옷을 입은 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칩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은 채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부르짖으며 악한 길과 폭행에서 돌아선 뒤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라는 니네베 임금의 선언은(3,7-9 참조) 이방민족인 니네베 사람들의 완전한 회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니네베에게 내리고자 하셨던 재앙을 거두십니다.

 

마지막 4장에서는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바라본 요나의 태도와 하느님의 뜻이 이어집니다.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하는 모습과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 것을 두고서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4,2-3)라고 말하면서 화를 냅니다. 요나는 먼저 자신이 하느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러지 않으심에 따라 자신의 권위가 실추되었으며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즉, 자신들의 원수인 아시리아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낸 것입니다. 요나는 니네베 성읍 동쪽에서 초막을 짓고 지내면서 아주까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했습니다. 그러다가 벌레가 들어 아주까리가 시들어버렸고 뜨거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자 요나는 다시 한 번 하느님께 죽기를 자청하며 화를 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요나에게 네가 아주까리 하나조차도 아까워하며 동정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짐승들이 니네베에서 하느님을 모른채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당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죄악을 저지른 니네베에도 회개가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설벌악이라는 정의에만 사로잡혀 있는 요나를 비롯해서 민족적-종교적 배타중의에 빠져 있었던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셨으며, 정의를 넘어서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를 닮으라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1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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