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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에 빠지다55: 애가

687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08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5) 애가


예루살렘의 비극을 탄식하는 슬픈 노래

 

 

- 애가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후 유다인들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노래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하예츠, ‘예루살렘 성전 파괴’, 1867. 유화, 베네치아 국립현대미술관, 이탈리아.

 

 

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낙」은 애가를 ‘에카’로 표기합니다. 이는 고통스러울 때 저절로 나오게 되는 탄식으로, 우리말 ‘아!’ ‘어찌하여!’ 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가 아닌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이를 ‘트레노이’(Θρηνοι)라고 옮깁니다. 우리말로 ‘슬픔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한자로 ‘애가’(哀歌), ‘조가’(弔歌)라고 표현하지요. 이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라멘타씨오네스’(Lamentationes)로 음역합니다. 우리말로 ‘애도’, ‘탄식’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교회 성경 분류 전통에 따라 ‘애가’로 표기하고, 예언서로 분류해 예레미야서 다음에 배치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이렇게 배열한 이유는 애가의 저자를 예레미야 예언자로 보는 전승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가를 ‘예레미야의 애가’라 부르기도 합니다. 「칠십인역」은 본문에 앞서 머리글로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이 사막으로 변하자, 예레미야는 주저앉아 눈물지으며 예루살렘을 위한 애가를 부르며 말하였다”라고 덧붙여 놓았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애가의 저자로 보는 전통은 역대기 하권 35장 25절에 근거합니다. “요시아가 자기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예레미야도 요시야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 그래서 요시아를 애도할 때에는 오늘날까지도 노래하는 남녀들이 모두 그 애가를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규정으로 삼았다. 그 애가는 애가집에 실려 있다.”(2역대 35,24-25)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예례미야가 애가의 저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애가에 담긴 다섯 개의 시가 서로 다른 문학 양식과 내용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가는 유다교 축제 때 읽는 멜길롯 곧 ‘다섯 두루마리’(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에 속하는 책으로, 예루살렘 함락 후 성전이 파괴된 아브달(파스카로 시작되는 한 해의 다섯 번째 달로 대략 7~8월) 9일에 봉독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두 차례 파괴됩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에, 서기 70년 로마 제국에 짓밟힙니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 모두 ‘아브달 9일’(티샤 베아브)에 일어났습니다. 열왕기 하권 25장 8-9절과 예레미야서 52장 12-13절은 제1성전이 파괴된 날을 각각 아브달 제7일과 제10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몇몇 열왕기 사본과 루치아노의 칠십인역본, 랍비 전통에서는 아브달 7일부터 성전 외곽이 파괴되기 시작해 성전 본 건물이 파괴된 것은 9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성전 파괴의 날’을 아브달 9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날 유다인들은 단식하고, 목욕, 기름 바름, 향수 등을 금하며 가죽신을 신지 않는 것으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를 추념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주간 전례 때 애가를 봉독합니다.

 

애가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후 유다인들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애가에 담긴 모든 노래가 기원전 538년 유배 시대가 끝나기 이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중 둘째와 넷째 노래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이 파괴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지어졌다고 합니다. 또 첫째 시는 기원전 598년 제1차 유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애가는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곧 다섯 편의 슬픈 노래가 묶여 있지요. 애가는 예루살렘 도성, 곧 ‘시온’을 의인화해 시온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1장 예루살렘의 참상, 2장 예루살렘 파괴, 3장 고통과 희망, 4장 징벌의 한가운데에서 비통한 현실, 5장 애원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애가 1-4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각 22개 구절로 이어갑니다. 첫째ㆍ둘째ㆍ넷째 애가는 ‘정치’, 셋째 애가는 ‘개인’, 다섯째 애가는 ‘공동체’ 차원에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를 애도합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애가는 예루살렘 멸망이 하느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강조합니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성실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불가피하게 내려진 비극이 바로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이 재난의 원인과 의미를 깨달은 유다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애가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을 통해 당신 백성의 참회와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또 이를 통해 다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당신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백성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애가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일으켜 주시라고 간청합니다.(애가 5,21) 하느님께서는 성실하시므로 이스라엘이 다시금 회개해 돌아온다면 그들은 구원될 것입니다.(애가 3,40-41; 4,22; 5,21)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7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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