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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경을 계속 번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687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08

[성경 이야기] 성경을 계속 번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은 다음 단어의 뜻을 몇 개나 알고 계십니까?

 

- 갑분싸. 존버, TMI, 렬루, 커엽다. 사바다, 롬곡옵높, 좋페, 법블레스유, 이생망, 팬아저, 복세편살, 엄근진, 혼코노, 괄도네넴띤, 실화냐다큐맨큐나, 번달번줍, 톤그로, 애빼시

 

저는 청년들과 많이 소통하는데도 3개 남짓 짐작할 뿐 무슨 외계어 수준입니다. ‘희얼사’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MZ 세대 신조어로 ‘희귀한 얼굴 사진’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무물보’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줄임인데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런 신조어들은 사실 시대마다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널리 쓰인 ‘마카오신사’라는 말은 멋있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유행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마카오신사라고하면 ‘아, 홍콩 옆에 있는 마카오에서 오신 분’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대화를 할 때 같은 한국어를 쓰면서도 소통은 어려울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부산에 처음 갔었습니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까지 양평이나 가평에 있는 할아버지 댁이나 외가집만 가보았지 그렇게 멀리 여행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부산 사투리는 정말 외국어 같아서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표준어를 사용하는 TV나 라디오 등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직장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소통의 간격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뿐 아니라 관습이나 문화는 한반도 내에서도 사실 많은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3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신약 구약성경을 나라와 시대에 따라 번역을 한다고 가정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머리말을 찾아보면 어떤 원본(Test)에서 번역된 것인지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아람어로 기록됐습니다. 물론 성경 원본은 분실되고 현재는 수사본들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당 수 유다인들이 그리스 본토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그리스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민족의 근간이 돼 주고 있는 성경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인들에게 전해지려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 작업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최초 성서번역은 히브리어(구약) 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긴 70인역본입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문화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이들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들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된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 부분을 그리스어로 옮겨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70명의 유다인 학자들이 번역작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 성서 번역본을 라틴어로 70이라는 뜻의 ‘칠십인역’(Septuaginta)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 칠십인역 성서를 간략하게 ‘LXX’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 유다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구약성경은 바로 이 70인역이었습니다. 그런데 70인역의 번역학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의미 전달을 위해 필요한 경우 주석을 하는 방식으로 의역을 시도했습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로마세계에 전파된 1세기 말 이후부터 구약과 신약은 아람어, 시리아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3세기 이후에는 라틴어가 세계 공용어로 정착된 후 밀라노의 주교 예로니모(345-419년)는 교황 다마소 1세의 위임을 받아 라틴어 성경 개정판인 ‘불가타’(Vulgata)를 만들었습니다. 불가타(382년) 성경은 서방교회 최초의 표준성서로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중세시대를 거쳐 종교개혁 이후까지도 1000년 이상 가톨릭교회 유일한 공인 성서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후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는 영국 평민들을 위해 위클리프(1330~1384년)가 신약성경(1382년)과 구약성경(1384년)을 처음으로 영어로 완역했습니다. 그리고 이 번역본들은 인쇄 기계 발명에 힘입어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영국의 틴테일(1480~1536년)은 영어로, 독일의 루터 (1483~1546년)는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해서 평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성경 번역은 1790년대 초에 시작됐으나 본격적으로 번역이 시작된 것은 1882년 개신교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J.로스와 평신도인 이응찬 · 백홍준 등이 루카복음서를 번역해 1883년에 간행하면서부터였습니다. 1887년에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국어 번역의 바탕이 마련되었습니다. 1900년 5월에 신약, 1911년에 구약성서를 완벽해서 ‘성경전서’로 합본 간행했습니다. 한글판 「공동번역 성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재일치 운동 움직임에 따라 세계성서공회 연합회와 교황청 성경위원회가 성경 공동번역 사업에 합의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성경 공동번역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1968년 1월 공동번역위원회가 구성됐고, 1971년 4월 신약성경을 우선 출간했습니다. 또 이것을 개정한 뒤 구약성경과 합쳐 「공동번역 성서」를 발간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독자가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이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다 보니 원문과 멀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1988년부터 독자적으로 성경의 우리말 번역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2005년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개막에 맞춰 ‘새 성경’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새 성경은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지 2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천주교회가 독자적으로 완역한 성경입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성경을 읽는 이에게 하느님 말씀을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시대와 장소,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 하느님 계시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의 특정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기록돼 있습니다. 성경 번역은 하느님 말씀을 그 시대에 맞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옮기는 것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성경 번역은 단순한 외국어 번역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재창조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순간, 번역학자를 통해, 또한 성경을 읽는 신자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작용하여 하느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넘치는 샘물(전국가톨릭경제인협의회 발행), 2023년 가을호(Vol. 33),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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