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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안식일, 계약의 표징

691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3-05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안식일, 계약의 표징

 

 

안식일은 우리 인류에게 정기적으로 휴식을 선사하신 하느님의 큰 선물입니다. 또한 세상 만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창조주의 맏아들로 선택되었음(탈출 4,22)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 아래에서 주님과 계약을 맺을 때, 안식일을 계약의 표징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나 주님이 너희를 성별하는 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징이다”(탈출 31,13).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형상(像)으로 구현하여 섬겼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신상 없이도 안식일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떠올리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안식일 규정이 종종 우상숭배 금령과 나란히 나옵니다(레위 19,3-4; 26,1-2 등).

 

그런데 흥미롭게도 탈출 20,1-17과 신명 5,6-21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탈출 20,11에서는 천지창조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한 반면, 신명 5,15에서는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이 어떻게 이집트 탈출 사건과 연결된 것일까요?

 

아마도 신명기 저자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 ‘쉬는’ 안식일 제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해 주시고 가나안에 ‘안착’하게 하신 일(여호 22,4; 23,1 등)을 떠올려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시켜준 사건이고, 천지창조는 세상을 ‘탄생’시킨 사건입니다. 말하자면, 두 탄생이 안식일을 매개로 연결된 셈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창조 질서 보전에 참여할 수 있고, 안식일을 깨면 창조 질서에 해를 끼치게 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예레 17,19-27 등에 나오는 안식일 준수에 관한 내용도,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 창조 질서가 깨지게 되면, 그들 역시 자기 자리인 고향에서 쫓겨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 4,23-26에서는 그런 재앙을 ‘땅이 불모로 변하고 하늘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 곧 태초의 혼돈(창세 1,2)이 되돌아오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과 계약의 율법을 지키라는 예언자들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결국 기원전 6세기에 멸망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방 민족의 땅에서도 그들은 하느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에제 11,16). 왜냐하면, 나라는 사라지고 성전도 파괴되었을지라도 안식일의 표징은 여전히 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빌론 유배가 끝나 시온 귀환이 이루어진 뒤엔 멸망의 원인을 반성하며 안식일을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과한 나머지, 형식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까다로운 안식일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는데, 이는 계약 불순종으로 멸망했던 기억을 간직한 그들이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3월 3일(나해) 사순 제3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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