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예레미야와 고통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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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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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예레미야와 고통의 신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톳”(예레 1,1)이 있습니다. 그의 고향이 아나톳이라는 점에서 예레미야가 사제 에브야타르 가문 출신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에브야타르는 다윗 왕실에서 차독과 함께 사제 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윗이 세상을 떠날 무렵, 아도니야 왕자와 솔로몬 왕자 사이에서 왕위 경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에브야타르는 아도니야의 편에 섰다가 좌천되어 고향 아나톳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대사제의 자리는 솔로몬을 지지한 차독이 차지하고요(1열왕 2,26-27.35). 아무튼 예레미야가 아나톳 출신이라는 점은 그가 에브야타르 사제의 후손일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는 기원전 7세기 후반 요시야 임금 때부터 유다 왕국이 멸망한 6세기 초까지입니다. 그야말로 격동기였는데, 당시 대국(大國)인 아시리아의 몰락(기원전 612년)과 유다 왕국의 몰락(기원전 587년)이 일어난 때입니다. 사실 비극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앙이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차리는 혜안이 필요한데, 옛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죄가 쌓여 한계에 달하는 기색이 감지될 때마다 ‘나팔을 불어 경고하는 파수꾼’(예레 4,5-6)처럼 백성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 파수꾼 나팔을 불었던 예언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스라엘 역사상 예언자가 겪는 고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도 예레미야입니다. 자국에 닥칠 재앙의 기운을 감지하고 동족에게 경고를 보냈지만, 오히려 백성은 거짓말로 불안감을 조장하는 예언자라고 그를 매도해 평생 괴로워해야 했던 사나이입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윤동주 시인의 이 시구는 예수님을 향한 것이지만,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살다 간 모습도 그려보게 해줍니다. 그가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미리 걸은 예언자라는 점 외에도, 말씀을 전하라 하시는 하느님과 들으려 하지 않는 백성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열한 삶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백성(2,35)과 그런 오만함 때문에 당장은 당신 백성을 구해주실 생각이 없으신 하느님 사이에서 찢어지는 고통을 그는 체험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정반대의 감정, 말씀이 주는 기쁨(15,16)과 그 말씀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15,17-18)을 한 몸에 껴안으며 동시에 그로 인해 갈라져야 했던, 어찌 보면 그리스도만큼이나 격렬하게 고뇌했을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전달한 신탁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결국에는 동족이 미래를 옳게 설계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었으니, 마침내 행복한 사나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가 박해를 무릅쓰고 전달한 말씀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망국의 비극을 극복하고 바빌론 유배 뒤에도 민족 정체성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3월 17일(나해) 사순 제5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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