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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예수님의 희년 선포

703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5-07

[구역반장 월례연수] 예수님의 희년 선포

 

 

지난 시간들을 통해 희년의 뜻과 의미, 희년의 근본정신,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희년의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지난달에 이어 레위기 25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레위 25,8-10)

 

레위기 25장은 희년에 관한 말씀의 요약이자 핵심으로, 희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희년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땅을 분배 받은 시점부터 일곱 번째 맞는 안식년의 바로 다음 해입니다. 7년에 한 번씩 안식년이 돌아오니 마흔아홉 해가 지나고 오십 년째가 되는 해를 희년으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 희년의 중심 주제는 ‘해방’입니다. 농사일을 쉬는 것은 안식년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희년에는 모든 부채가 탕감되고, 매매한 땅이나 담보로 잡힌 소유지 등이 본래의 주인에게 반환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또한 빚을 져서 노예가 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희년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와 ‘해방’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금리가 높이 치솟고 대출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 당시 사람들에게 희년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업 실패 등으로 집을 잃고 가족과 떨어지게 된 사람에게 있어서 집과 땅을 돌려받고,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분명 크나큰 희망입니다. 이는 삶 안에서 몇 번씩 넘어지고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희년의 실질적인 도움과 효과로 인해 과연 희년이 기쁨의 해가 될만한지 먼저 함께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희년을 통해 다시금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더욱 깊이 체험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다른 사람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2025년 희년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런 새 삶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봅니다.

 

오늘의 주제인 ‘예수님의 희년 선포’를 살펴보기 전에 구약 성경의 말씀을 하나 더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을 주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을 ‘정의의 참나무’ ‘당신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서 심으신 나무’라 부르도록 하셨다. 그들은 옛 폐허들을 복구하고 오랫동안 황폐한 곳들을 다시 일으키리라. 폐허가 된 도시들, 대대로 황폐한 곳들을 새로 세우리라.(이사 61,1-4)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은 앞서 읽어본 레위기 25장의 ‘해방’과 조금 다른 점이 돋보입니다. 레위기에서는 해방의 실질적인 주체가 땅의 현재 주인, 혹은 채권자였습니다. 레위기의 해방은 땅의 현재 주인이 본래의 주인에게 땅을 돌려주고, 채권을 가진 사람이 채무를 탕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에서는 해방의 주체가 하느님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가 해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한편 레위기의 해방은 땅, 빚, 노예 등 사회 · 경제적인 면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서의 해방은 사회 ·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인 면도 다루고 있습니다. 곧 마음이 부서진 이들과 슬퍼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구원을 주는 해방의 모습 또한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레위기의 희년 규정이 과연 잘 지켜졌을까?’ 처음에는 잘 지켜졌을 수도 있지만, 점점 사회가 커지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실질적으로 희년의 규정들이 지켜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가진 재산과 권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사야서에 나타난 희년에는 종말론적인 신학이 더해집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희년의 해방이 종말에 가서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주님의 은혜의 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더 이상 희년의 해방은 권력을 가진 혹은 땅이나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과 구원의 결과라는 뜻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약의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7-21)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살펴본 이사야서 61장을 그대로 인용하셨는데, 마지막 한마디 말씀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희년은 예수님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득권의 탐욕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해방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나타났던 종말론적 관점이 마침내 메시아의 오심으로 완성되고 실현될 것입니다. 해방과 구원의 시간은 ‘오늘’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5월호, 박민우 신부(사목국 노인사목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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