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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복음 속 희년 이야기

709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6-05

[구역반장 월례연수] 복음 속 희년 이야기

 

 

지난 시간에는 레위기와 이사야서에 나온 희년에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비교해 보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희년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어렴풋이 살펴볼 수 있었는데, 오늘도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7-21)

 

예수님께서는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에 관한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봉독하시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 안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사람들의 탐욕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해방’의 규정들이 이제 예수님을 통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선포를 통해 레위기에서 언급된 희년보다 더 깊은 차원의 ‘해방’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위의 루카 복음 4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나자렛 회당에서 첫 설교를 하시는 장면입니다. 대통령이 새로 뽑히거나, 기업의 회장이 선임되었을 때 그의 첫 취임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위 장면도 첫 취임사를 건네는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데, 루카 복음사가는 이 장면을 통해 드디어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앞으로 펼쳐질 예수님의 활동이 희년의 궁극적인 해방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메시아관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것에 가까웠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고, 다윗과 같이 이상적이고 큰 왕국을 세워 정의와 공정으로 다스리는 메시아를 원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해방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억눌린 죄인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루카 4,28-29)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누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시길 바라고, 누구는 우리를 건강하게, 부유하게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주시기를, 고통을 줄이고 평안을 가져다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에게 정치적, 사회적 메시아의 모습을 요구하고 그에 부응하지 않자 십자가에 못 박은 당시의 유다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꼭 성찰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한편 레위기의 희년법은 신약 성경에 이르러 예수님을 통해 변화를 겪습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변화라기보다 완성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다음의 복음들을 통해 레위기의 규정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너희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너희 곁에서 허덕이면, 너희는 그를 거들어 주어야 한다. 그도 이방인이나 거류민처럼 너희 곁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레위 25,35) 라는 말씀은 루카 복음 10장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큰 부상을 당하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따르던 사제도, 레위인도 그를 그냥 지나쳤지만, 여행을 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구해주고 돌보아주었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6-37)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단순히 경제적으로 이웃의 빚을 줄여주거나 금전적 지원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더욱 적극적인 도움을 줄 것을 명하십니다. 먼저 다가가고, 돌보아주고, 지속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레위 25,17) 라는 말씀에서는 루카 복음 19장의 세리 자캐오의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당시 세리는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족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감화를 받은 자캐오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횡령한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복음을 통해서도 구약의 문자적 규정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의 체험적 실천이 드러납니다.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마지막으로 레위기의 노예 해방과 관련하여 살펴볼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27)

 

위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노예나 종을 해방하거나, 아예 노예로 부리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서, 오히려 이웃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과거 레위기의 희년법을 사랑과 나눔, 그리고 섬김의 실천으로 더욱 확장시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희년을 준비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6월호, 박민우 신부(사목국 노인사목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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