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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마르 7,1-23)

714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6-26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마르 7,1-23)

 

 

신학생 시절, 친구들과 외출을 마치고 신학교로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서 혜화동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고 계셨습니다. 당시 학교 근처에 큰 고물상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 종일 주워 모은 폐품을 팔러 가시던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할머니 도와드리자.” 한 친구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가면, 우리 귀원 시간을 못 지킬 것 같은데….” 다른 친구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할머니를 도와드릴 것인가, 신학원의 규정을 충실히 지킬 것인가. 그렇게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모두 “일단 도와드리자!”라고 말하며 할머니께 달려갔습니다. 수레를 끌고 밀고, 그렇게 고물상으로 달려가 짐을 다 내려드린 후, 학교 입구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외출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났고, 결국 기도에도 늦게 되었습니다. 신학원 규정을 어긴 저희는 저녁 식사 후 원감 신부님을 찾아가 외출에 늦은 사실과 그 이유를 이실직고했습니다. 늦었다는 사실에 혼이 날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라.”

 

어느 날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7,5)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을 잊고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에 얽매여 있는 그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지적하시면서 이사야 예언자가 위선자들을 두고 했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7,6-7)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악용되고 있던 종교적 실천 중 하나인 ‘코르반’을 언급하십니다. ‘코르반’은 하느님께 예물을 드리기로 한 서약을 뜻하는데, 이 서약을 하면서 부모님에게 공양할 물건을 성전에 바친다고 맹세하면 공양의 의무가 면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부모 공양을 피하려고 코르반 서약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 부모 공경보다 앞선다는 논리를 들며 악용된 코르반 서약도 유효하다고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왜곡된 종교적 실천을 고발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7,8) 그들은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보다 사람들이 만든 전통에 집착했습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한 규정들이 오히려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신학원 규정을 어겼지만, 그보다 사랑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신부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늘 그분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라.”

 

[2024년 6월 23일(나해) 연중 제12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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