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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스켐의 역사

735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8-28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스켐의 역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이끈 지도자는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스켐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며 ‘낯선 신을 버리고 주님만 따르겠다.’는 백성의 서약을 받아냅니다(여호 24장). 스켐은 사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5㎞가량 떨어져 있는데요, 바로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백성과 계약을 맺고 그에 따른 규정과 법규를 세웠습니다. 이를 증거할 돌기둥도 세웠습니다(1-28절). 여호수아의 이런 행보는 시나이산 계약을 중개하고 율법을 전달한 모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도 계약 체결 당시 산기슭에 기념 기둥 열두 개를 세운 바 있습니다(탈출 24,4). 그런데 여호수아는 왜 계약 체결지로 스켐을 택하였을까요?

 

그 까닭은 스켐이 지닌 종교적 중요성에 있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과 야곱이 제단을 쌓은 곳이고(창세 12,6-7; 33,18-20), 해당 본문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모세 역시 시나이산 계약에 따른 축복과 저주를 선언할 장소로 스켐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신명 11,29; 27,12-13). 여기에는 스켐이 곡창 지대를 낀 교통 요충지라는 점도 한몫한 듯합니다. 족장 도로가 통과하는 이곳은 가나안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차점이기도 합니다. 족장 도로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 다닌 길로서 가나안 최남단의 브에르 세바에서 헤브론과 예루살렘을 거쳐 스켐까지 이어지던 길입니다. 옛 백성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족장 도로로 다니곤 하였다는 사실은 예레 41,5 등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켐에서는 백성이 장차 가나안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리라는 기원을 담을 수 있었을 터입니다. 스켐에는 ‘야곱의 우물’이라는 샘이 있고(요한 4,5-6) 목축에도 좋은 성읍이라 야곱의 아들들도 방목을 위해 스켐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창세 37,12-14).

 

스켐의 위상은 왕정 시대에도 이어져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 구실을 얼마간 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이으려고 이스라엘의 열두 원로들을 찾아간 곳도 스켐입니다(1열왕 12,1-19).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린 뒤에 스켐은 북왕국의 첫 수도가 됩니다(12,25). 심지어 오늘날까지 스켐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성스러운 장소입니다(요한 4,20).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스켐은 그 신성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여호수아가 계약 체결의 증거로 ‘스켐의 향엽나무 밑에’ 돌기둥을 세우지만(여호 24,26), 이미 창세 35,2-4에는 야곱이 공교롭게도 ‘스켐의 향엽나무 밑에’ “낯선 신들”을 묻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야곱은 “낯선 신들”을 묻기만 하고 태우지 않았으므로(신명 7,5.25 등), 스켐의 나무 밑에는 여전히 “낯선 신들”이 묻혀 있었던 셈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스켐의 신성함은 처음부터 유지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켐은 성소가 될 수 없다.’는 유다인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되었으니(『창세기 랍바』 81,3), 그 지나온 역사가 흥미롭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8월 25일(나해) 연중 제21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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