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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북쪽 땅

752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0-3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북쪽 땅

 

 

오늘 제1독서인 예레미야서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북녘땅에서 데려오고… 모아들이리라.”는 신탁이 나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기원전 6세기 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입니다. 이 재앙이 끝나고 백성이 죄를 용서받는 날,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데려 오실 거란 예고지요. 말하자면, 남왕국 백성이 유배 갔던 바빌론을 “북녘땅”으로 상징화한 셈입니다. 그런데 옛 바빌론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자리해 있는데, 예레미야서에서는 왜 북녘땅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 이유는 ‘북쪽’이 지닌 상징성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고대 근동인들은 북쪽을 신비롭게 생각하여 신들이 사는 곳이라 믿었습니다. 바빌론 임금의 몰락을 예고하는 이사야서에서도 북녘을 신들의 모임이 있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너는 네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지.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리라’”(14,13). 옛 가나안의 바알 신화에는 바알 신이 거주하는 산이 북쪽을 뜻하는 [짜폰]으로 나옵니다. 성전이 자리했던 예루살렘의 시온산도 시편에서 “북녘의 맨 끝”(48,3)으로 묘사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언자로 세워진 뒤 보게 된 첫 번째 환시를 통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이 죗값을 치를 때 주님의 재앙이 북쪽에서 닥치리라는 신탁을 전합니다. 그 환시는 “끓는 냄비가… 북쪽에서부터 쏟아질 듯 기울어져”(예레 1,13)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끓는 냄비가 기울어져 있다.’는 건 전쟁과 재앙이 일어나 백성에게 당연한 일상이 뒤집히리라는 전조였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을 ‘끓는 솥’에 비유하며 바빌론에게 포위당하였음을 알린 에제 24,1-14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또한 냄비가 “북쪽에서부터” 쏟아질 듯하다는 건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서쪽이 지중해, 동쪽은 광야로 막혀 있어 주변국이 침입해오는 방향은 대개 북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에는 북쪽에서 들이닥칠 재앙 예고가 자주 나오며(4,6; 6,1.22-23; 10,22 등), 20장 이후에는 그 정체가 바빌론의 침공으로 밝혀집니다(20,4-6; 21,4-7 등). 그리고 예레미야와 동시대 바빌론에서 활동한 에제키엘은 유배지에서 주님 영광의 환시를 목격하는데, 이때는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와 주님 발현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의 전조가 되어주었습니다(에제 1,4).

 

이렇게 북쪽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백성이 지은 죗값을 치르게 하리라고 예고하실 때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백성이 죗값을 치른 뒤에는 같은 방향에서 구원의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그 예가 바로 오늘 제1독서입니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흩어 버리신 그 북녘땅에서 다시 그들을 모아들여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실 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10월 27일(나해) 연중 제30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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