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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 속 기도 이야기20: 하느님의 일용직 노동자의 기도

760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03

[성경 속 기도 이야기] (20) 하느님의 일용직 노동자의 기도


걱정 없이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도록 초대

 

 

-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기념하는 예루살렘 ‘주님의 기도 성당’ 외부 벽에 있는 우리말 주님의 기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 교부는 주님의 기도를 전체 복음의 요약이라고 했고 오늘날에도 교회는 주님의 기도를 성무일도 아침·저녁 기도와 미사 등 하루에 세 번씩 바칩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 및 그와 유사한 시기에 쓰인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인 디다케(마태 6,9-13;루카 11,2-4; 디다케 8,2)가 주님의 기도를 전하며 후대에 삽입된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라는 마침 영광송은 개신교와 천주교를 막론하고 모두가 사용합니다.

 

종말론과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은 후기 유다교는 여러 청원 기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일곱 개의 청원을 담고 있는 주님의 기도는 내용상 그와 유사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하나로 모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선 하느님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을 넘어 지극히 높은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주권자이시면서도 일용할 양식과 죄와 유혹과 악 등 우리의 구차한 삶을 돌보시는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과 성부의 품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첫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과 관련되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첫 번째 청원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기보다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청원에 답하실 때 기도하는 이는 이 거룩함에 사로잡히고 변화됩니다.

 

두 번째 청원은 하느님이 지니신 임금의 주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나라를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곳으로 기대했고(이사 9,6; 32,15-17; 52,7; 60,17) 예수님은 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청원은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자기 뜻을 억누르거나 윤리적으로 완벽히 행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뜻인 정의와 평화는 기도하는 이가 하느님이 원하신 피조물로서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때, 하느님과 함께 자기 뜻을 펼치고 행동할 때 이루어집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네 번째 청원은 유일하게 물질적 선물에 관계되지만, 그뿐만 아니라 사랑과 신뢰, 타인과 함께 나눌 시간 등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늘을 선물하시고 과거에 대한 미련 없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오늘을 온전히 살도록, 영원한 현재인 하느님 앞에서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다섯 번째 청원은 상처받은 삶의 치유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얽히고설킨 자기 삶의 역사 전체의 화해를 청합니다. 그는 하느님께 너그러우심을 청하듯이 자신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너른 마음을 드러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이끌어 주십사는 여섯 번째 청원은 일상의 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궁극적 유혹을 말합니다. 기도하는 이는 주님께서 자신을 늘 동행해 주시기를,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시기를 청합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청원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눈감아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해방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청합니다. 기도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건지시어 그분의 품 안에 넣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일곱 가지 청원 중 용서의 청원에서만 인간의 행위가 나타나므로 주님의 기도는 완전히 하느님 중심적인 기도이며 그 안에 그분 안에서 평화로이 숨쉬고 살아가는 하느님 자녀들의 여여함이 드러납니다.

 

[가톨릭신문, 2024년 12월 1일, 신정훈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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