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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경, 하느님의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십자가 상 그리스도

766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17

[성경, 하느님의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십자가 상 그리스도

 

 

오늘은 십자가의 요한(Juan de la Cruz, 1542-1591) 성인께서 직접 그리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십자가 상 그리스도 그림에 대한 묵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독자분들께서 이 지면을 통해 보고 계실 그림은 한 가지 이색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십자가 상에 못 박혀 계신 주님을 묘사하는 그림은 대개 십자가를 정면에서 바라보거나 또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요한 성인께서는 그림을 통해 십자가를 위에서 보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문득 성인께서 관상하신 십자가 상 주님 앞의 현실이 궁금해집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시선을 이해해보고자 올해 요한 성인의 축일(12월 14일)에 주어지는 전례력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집회 48,1-4.9-11; 마태 17,10-13) 이 말씀들은 공통적으로 엘리야를 가리킵니다. 그는 메시아 도래의 전령입니다. 강생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고대한다는 대림 시기의 의미에도 들어맞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의 전례력이 엘리야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연결 짓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상응점이 있을까요?

 

집회서의 말씀은 엘리야를 불(火)의 예언자로 소개합니다. 그에 대한 서사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1열왕 17-19장에 따르면, 엘리야의 출현(가뭄-땅을 마르게 하는 불) 및 예언직 수행(바알의 예언자들과의 대결)에 불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말하자면, 불은 엘리야의 예언자적 신원에 근본적인 힘과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직접 대면해주십니다. 그 대면은 불을 통해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히브리어 원어를 다르게 해석하자면) ‘모든 것이 먼지와 재가 될 만큼 다 바스러지고 난 뒤에 들리는 소리’를 타고 이루어집니다.(1열왕 19,11-13 참조) 이로써 예언직을 수행하며 한껏 타오른 불의 예언자는 불이 사그라진 뒤에 남은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허무이자 죽음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놀라운 역설이 있습니다. 예언자는 그렇게 바스러진 재가 되었기에 바람에 실려 하느님께로 승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2열왕 2,1 참조)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는 엘리야의 도정을 뒤따르셨습니다. 성인의 영적 동반자였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 따르면, 그는 “한평생 줄곧 성령이신 사랑의 불로 불붙어 끊임없이 타오르는 통나무처럼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인께서는 태양보다 밝으신 빛 자체이신 분을 바라보다가 소경이 되셨습니다. 성인의 표현대로, ‘어두운 밤’에 들어서시게 됩니다. 어두운 밤은 참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 심지어 자신마저도 볼 수 없게 지워버리는 밤입니다. 성인의 표현에 따르면, 어두운 밤의 심연 가운데 놓임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하느님의 정화의 불에 놓임입니다. 참 하느님 외의 모든 것이 재가 됩니다. 이때 성인은 엘리야 예언자께서 경험하신 구원 역사의 역설에 참여하게 되십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에서 성인의 영혼은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관상합니다.

 

이러한 성인의 시선이 오늘 우리가 접하고 있는 그림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림은 오직 십자가 상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동시에 주님의 십자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아버지 하느님께로 올라가시는 주님의 마지막 숨, 성령께 속해 있는 성인의 영혼을 가늠하게 해줍니다. 마치 엘리야를 하늘로 들어 올린 바람이 부는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먼지와 재가 된 성인의 영혼과 일치를 이루어 주시고, 그 가운데 성인께서는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성부 하느님께로 향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시선을 공유 받으실 수 있었겠지요.

 

두 분 신앙 선조들의 삶에 범부(凡夫) 신자의 삶을 감히 비교함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보다 더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을 두 선조들께서 전구로써 지지하시고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스스로 세워놓은 하느님에 대한 시선이 바스라지기를, 성령께서 이끄시는 현실에 속하는 먼지와 재가 우리이기를 희망합니다.

 

[2024년 12월 15일(다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가톨릭마산 8면, 조우현 십자가의 요한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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