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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마음과 심장

767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17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마음과 심장

 

 

오늘 복음에는 주님께서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루카 3,17)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타작마당은 낟가리의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던 곳으로 수확 때 특히 분주해지던 장소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성경에서는 평생 쌓은 선과 악을 헤아려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심판장의 표상으로 자주 쓰였습니다(미카 4,12; 마태 3,12 등). 한편, 제2독서에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줄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옛 이집트의 심판 신학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옛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 때, 뇌는 필요 없는 부분이라 여긴 반면, 심장은 소중하게 보관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 지혜가 자리잡은 곳이 심장이라 믿었기 때문인데요, 필리 4,7의 “마음”도 직역하면 ‘심장’입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마음”의 대부분이 심장을 의역한 말입니다(창세 8,21 등).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높은 의학 수준에도 뇌와 심장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신관에서 심장이 맡은 역할을 이해하려면 「사자의 서」(Book of Going Forth by Day)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알아야 합니다. 「사자의 서」는 망자가 가게 될 사후 여행의 안내서로서, 그가 저 세상에 잘 도착하도록 도와줄 주문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주문은 망자의 심장을 ‘마아트’의 깃털과 함께 달아 무게를 재는 의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망자가 내세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이 의식으로 판단된다고 믿었으므로, 이집트인들은 망자를 묻을 때 「사자의 서」를 같이 매장하곤 하였습니다.

 

이때 망자의 심장 무게를 가늠해줄 깃털의 주인 마아트는 이집트인들에게 법과 정의, 진리와 지혜의 여신이었습니다. 망자의 심장 무게가 마아트의 깃털과 같거나 가벼워야 저승의 신 ‘오시리스’에게 무사히 갈 수 있습니다. 만약 깃털보다 무거우면 ‘아미트’라 불리는 괴물에게 잡아 먹히게 됩니다. 그래서 옛 이집트에서는 심장이 무거우면 죄 많은 사람이고 심장이 가벼우면 죄 없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제 탈출 10,1을 봅니다. 여기에는 ‘주님께서 파라오와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이집트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드러납니다. “완강하게”는 “무겁게”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주님께서 파라오와 그 신하들의 심장을 무겁게 하셨다.’ ‘죄를 짓게 하셨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집트인들을 겨냥한 경고에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도 우리 역시 ‘마음이 무겁다.’ ‘가볍다.’라는 표현을 쓰니 얼마나 흥미로운지요? 하느님께서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한 옛 백성을 지켜 주셨듯이, 오늘도 주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이 가볍도록’ 지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12월 15일(다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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