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다시 보기] 가톨릭 신자의 토정비결

정초가 되면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살기를 바라며, 초하룻날 동이 트는 새날의 첫 태양을 맞이하려 근처의 높은 산을 오르며, 두 손을 모으고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을 하기도 하고, 토정비결(土亭秘訣)에도 관심을 가지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그 토정비결을 미신이라고 믿어, 망설이기도 하고, 유혹을 참지 못하고 선을 넘기도 하지만, 보고 나면 마음이 께름칙하여, 고해성사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 신자들에게 좋은 조언을 하나 해 드릴까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저의 선친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입니다. 아버지는 집안에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성경책을 가져다 놓고, 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성호경을 정성들여 긋고 주모경을 외우고 나서, 눈을 감고 성경책 한 곳을 집히는 대로 펼칩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그곳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당면한 그 일에 대해 주님께서 주시는 답이라 생각하고 생활하셨습니다.

제가 부제품을 받기 위해 대 피정을 갈 때였습니다.(1980년 1월) 마음이 무척 복잡하고 무거웠습니다. 내가 과연 교회 사람으로 합당한가? 끝까지 교회에 누가 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난 것이 어릴 때 저의 아버지가 성경책을 펼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똑같이 성호경을 정성들여 긋고 주모경을 외우고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때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는 대목이었습니다.(루카 22,31-34) 저의 세례명도 베드로입니다. 내가 배반하다니! 가슴이 쿵 했습니다. 차라리 신부가 되지 말아야지. 아니, 되면 안 되지! 이런 상태로 일주간의 대 피정을 하러 눈 쌓인 알프스의 산 중턱에 있는 어느 수녀원으로 갔습니다. 그 말씀이 내게 주는 암시는 무엇일까? 착잡한 마음을 안고 끝없이 펼쳐진 눈밭을 혼자 거닐며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그 묵주는 제가 1964년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산 하얀 묵주로 항상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간직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저는 그 묵주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신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입니다.

피정 중 하루는 눈 덮인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그곳에서 꼬마들이 눈싸움을 하고 놀기에 나도 그들과 더불어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피정하던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산보를 하면서 다시 묵주기도를 하기 위해 호주머니에서 묵주를 찾았는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묵주를 잃어버리다니. 17년간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 그 눈싸움 장소에 돌아가서 그 묵주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넓은 눈밭에 그 하얀 묵주를 어찌 찾겠는가? 이것은 분명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답이다: 내가 신부가 되지 말라는? 허탈한 마음으로 피정집으로 돌아와서, 온갖 곳을 다 뒤지다 마지막으로 어제 입었던 외투의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그 묵주를 찾았을 때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기쁨, 그리고 안도감: 나도 신부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배반 예고”를 다시 펼쳐 읽었습니다. 그런데 묵주를 찾고 나서 읽어보니 이번에는 그 대목 가운데서 이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데, 내가 무엇을 의심하고 절망하랴! 이 믿음으로 이제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멋진 토정비결이 아닐까요?

[2025년 1월 5일(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사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