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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열두 소예언서의 지혜: 호세아 예언서

792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3-05

[열두 소예언서의 지혜] 호세아 예언서

 

 

시대 상황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북왕국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1,1)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40년간 왕위를 지킨 예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를 이어 25년 동안 무려 여섯 명(즈카르야, 살룸, 므나헴, 프카흐야, 페카, 호세아)이 왕직에 올랐으나 대부분 살해되거나 폐위되었을 만큼 국정은 혼란스럽고 사회 분위기는 절망적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은 강력한 세력인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이집트를 중심으로 결성된 반(反)아시리아 동맹에 가담하여 형제의 나라 남유다를 공격할 만큼 강대국들 틈에서 기회를 엿보며 인간적인 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기에 바빴습니다. 한편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전례를 형식과 규정에 치우친 행사로 전락시켰고, 백성들은 가나안 토속 신앙인 바알 숭배에 빠져 현실적 풍요만을 기원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북이스라엘은 망국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그 결과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멸망하였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진실된 마음과 계약에 대한 신의, 그리고 하느님을 아는 예지를 상실한 민족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고소하셨습니다. 

 

“저주와 속임수와 살인, 도둑질과 간음이 난무하고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땅은 통곡하고 온 주민은 생기를 잃어 간다. 들짐승과 하늘의 새들 바다의 물고기들마저 죽어간다.”(4,2-3)

 

 

호세아와 고메르 

 

이 시기 하느님께서는 호세아를 예언자로 세우시며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명령을 하십니다.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1,2) 이에 예언자는 명령에 그대로 따라 고메르를 자기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호세아의 아내가 된 고메르는 배우자를 두고도 지속적인 간음과 불륜을 저지르며 창녀의 행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양식과 물, 양털과 아마, 기름과 술을 주는 내 애인들을 쫓아가야지.”(2,7)라고 하며 다른 남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가장의 의무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남편 호세아를 의지하지 않고 ‘애인들이 준 해웃값’(2,14)에 의지하며 자신을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 외부의 애인들이라 착각했습니다. 

 

이렇게 계약에 불충하고 밖으로 겉도는 부인을 향해 호세아는 “알몸을 가리라고 준 내 양털과 아마 옷을 벗겨 내리라.”(2,11)라며 참된 배우자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는 징계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런 예언자에게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 주어라.”(3,1) 그러자 호세아는 불충한 여인을 다시 데려와 품어줍니다. 

 

도망만 다니며 부정한 짓을 멈추지 않는 아내를 또다시 인내와 사랑으로 맞아들이는 호세아의 행동이 애처롭다 못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한 남자의 인생에서 중차대한 일인 결혼을 통해 북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고자 하신 하느님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혼인 서약을 가벼이 여기며 배우자에 대한 도리를 충실히 지키지 않는 부인에게 참된 부부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하느님과 이스라엘

 

호세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자신의 삶을 통해 증언하고 있으며, 특히 부정한 배우자를 향한 한결같은 인내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애정 어린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가나안 정착 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자신을 끌어내신 주님을 믿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풍요의 신 바알과 우상들이 자신들에게 먹고 마실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준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들에게 돌아서서 건포도 과자를 바치며, “산꼭대기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고, 언덕 위에서 분향하며 그늘이 좋다고 참나무와 은백양과 향엽나무 아래에서도 분향”(4,13)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과 전쟁, 강대국과의 동맹 외교가 자신을 지켜 주고 보호해 준다고 믿으며 인간적 방법에 운명을 걸었습니다. 시나이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으로 맺어진 계약이 무색할 만큼 이스라엘은 이제 주님을 저버리고 불륜에 빠져있었습니다. 

 

계약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주어져야 할 것은 하느님의 진노와 징벌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호세아를 통해 당신의 멈추지 않은 끈질긴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루빨리 마음과 태도를 바꾸어 진정한 배우자인 당신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이와 같은 인내심 가득한 하느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호세아에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 주어라.”(3,1)

 

아무리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운다 한들 하느님께서 손수 “걸음마를 가르치셨고, 팔로 안아 주셨고, 볼을 비비고 젖을 먹인”(11,3-4 참조) 이스라엘을 내치실 수 없으십니다. 오히려 배반하여 멸망으로 치닫는 이스라엘을 보며 하느님은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르십니다.”(11,8 참조)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은총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14,5)라고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호세아의 지고지순한 순정, 한결같은 사랑, 지칠 줄 모르는 인내, 모든 것을 되돌리는 용서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변함없는 자비와 사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호세아서의 지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사랑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그 사랑을 내 삶으로 옮겨와 그대로 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받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 비해 내가 하고 있는 인간적인 사랑은 너무나 미약하고 턱없이 부족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을 등지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백성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끈질긴 사랑을 증명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 백성들에게서 느낀 배반과 배신을 직접 체험해야 했고,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베푼 용서와 사랑에 자신의 운명을 동참시켰습니다. 그런 호세아의 삶이 하느님께는 작은 위로와 희망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는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요? 하느님이 베푸시는 사랑에 무지하여 건강과 평화, 풍요와 편안을 문명과 과학, 돈과 권력이 준다고 착각하는 이 시대에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성모님의 군단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2월호, 여한준 롯젤로 신부(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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