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갈릴래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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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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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갈릴래아 사람
이스라엘의 북쪽으로 올라가면 갈릴래아 지방이 나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비옥한 곳은 ‘이즈르엘’ 평야인데, 그야말로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느끼게 해주는 곳입니다. 이즈르엘은 ‘하느님께서 씨를 뿌리시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직접 파종하신 듯 곡식이 많이 나는 곡창 지대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갈릴래아 지방에는 예수님의 유년기 고향인 나자렛도 있습니다.
다만 갈릴래아 지방이 워낙 비옥하여 예부터 이곳을 노리는 이방 세력이 많았습니다. 판관 가운데 유일한 여자였던 드보라는 가나안 장군 시스라의 침입에 맞서 갈릴래아 지방 타보르산 전투에서 승리합니다(판관 4-5장). 그다음 판관인 기드온도 갈릴래아 지방까지 올라온 유목민 미디안을 꺾습니다(6-9장). 이스라엘에 왕정이 들어선 뒤에도, 첫 임금 사울은 갈릴래아 지방 바로 아래쪽에 자리한 길보아산에서 필리스티아와 마지막 전투를 하다 전사합니다(1사무 31장). 오죽하면 성경에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 4,15; 이사 8,23)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올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요한 7,52).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나타나엘도 그분에 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반문합니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태어나신 곳이 초라한 마구간이었듯이, 유년기를 보내신 갈릴래아도 천시 받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점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2000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학 공식처럼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묵상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연찮게 접하게 된 주보에서 마더 데레사에 관한 글을 읽은 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 의미를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콜카타에 방치된 빈민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던 마더 데레사.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보려 했지만 너무 망가진 탓에 그들에겐 어떠한 의욕도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는 누군가의 기부금에 의지하거나 후원회를 모으려 한 대신, 그들 곁으로 다가가 직접 돕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죽는 빈민들이 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날 때, 하느님의 자녀로 죽게 해 주심에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예수님 공생애의 의미를 뿌리까지 이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곧 상대의 처지로 직접 내려가 함께 아파하는 진정한 사랑 말입니다.
우리 인간을 하느님 나라에 걸맞도록 끌어올려 구제하기에는 희망도 의욕도 보이지 않으니, 하느님께서 몸소 가장 누추한 마구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밑바닥 사람들부터 끌어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시 받던 갈릴래아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시며 모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심으로써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셨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5월 4일(다해)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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