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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에제키엘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811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5-14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에제키엘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부와 권력과 명성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뜻으로, 사회 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높은 도덕성을 가리킵니다. 옛 이스라엘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 중에는 에제키엘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는 사제 집안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존립이 위태로울 때 백성을 이끈 예언자입니다. 사제 부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에제 1,3) 어린 시절부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25세 되던 기원전 598년(또는 597년)에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자로 살았기에, 그의 활동지는 옛 바빌론입니다. 그가 유다 임금 여호야킨과 귀족들과 더불어 1차 유배 때 끌려간 걸로 보아 명문세족에 속하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시종일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는 익명 속에 감추며(3,1; 12,2 등)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살았습니다.

 

그가 거주한 마을은 크바르 강 가의 텔-아비브 정착촌으로 보입니다(에제 3,15). 크바르 강은 유프라테스 강물을 끌어들인 운하입니다. 에제키엘은 유다 원로들이 찾아와 조언을 구할 만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8,1; 20,1 등). 하지만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경고한 그와 다르게, 대다수 예언자들이 바빌론은 물러가고 평화가 오리라는 감언이설을 선포했기에(13,10), 유배자들은 에제키엘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고 조롱거리로 만들기도 했습니다(2,6). “저자는 비유나 들어 말하는 자가 아닌가?”(21,5) 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에제키엘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자기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여길 만큼(3,16-21) 백성에게 큰 책임감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직전에는 하느님께서 아내를 데려 가시고 애도조차 허용하지 않으셨지만, 이를 오롯이 견뎌냅니다(24,16-18). 이는 상처(喪妻)한 슬픔에 압도당한 에제키엘이 애도조차 못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자신들의 기쁨이자 자랑인 성전이 파괴되는 고통에 애도를 잊게 되리라고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제키엘의 이런 고투에 종지부가 찍힌 건 예언대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난 다음입니다. 이때부터 에제키엘은 백성 사이에서 참 예언자로 인정받고 그들에게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함락 전까지는 죄 때문에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며 심판을 예고했지만(1-24장), 망국 뒤에는 제2의 탈출 곧 바빌론 탈출을 선포하여 귀환의 희망을 심어준 것입니다(33-48장). 이렇듯 에제키엘은 이방인의 땅에서 유배살이하던 백성을 제2의 모세처럼 선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듯, 그도 자신이 예언한 회복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온 귀환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인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한 이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평생 예언자로 살며 소명에 투신한 에제키엘은 처녀의 몸으로 주님께 순종한 성모님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젊은 날 고향을 떠난 그는 바빌론에서 생을 다한 듯하며, 그의 무덤은 이라크의 힐라 마을 근처 알-키플에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5월 11일(다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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