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성경에서 희년을 보다: 모압 여인 룻에게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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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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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희년을 보다] 모압 여인 룻에게서 배우다
성경에는 베들레헴에서 이삭을 줍다가 밭 주인 보아즈와 혼인해 다윗 임금의 조상이 되었다는 ‘룻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아즈가 룻과 혼인한 배경은 옛 이스라엘에 존재한 ‘속량 제도’에 있습니다. 이는, 백성이 땅이나 자기 자신을 팔아도 언제든 되살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하며, 형제나 친족이 대신 치뤄 줄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25,25)에 나오는 희년법은 이런 대속자를 “구원자”라 칭하는데, 보아즈가 룻과 그의 시모 나오미에게 그런 구원자로 등장합니다(룻 4,3-4).
룻기의 배경(1,1)은 판관 시대입니다. 가나안 기근 탓에 나오미의 가족이 모압으로 이주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신명기 23장 7절에 ‘모압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면 안 된다.’라고 하는데도 그곳으로 피난 가게 된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부터 이스라엘 사회는 이방인과의 혼인을 곱게 보지 않았지만, 나오미의 아들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습니다. 그러다 남편과 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측은히 여겨 새 삶을 꾸리게 합니다. 이때 이별을 슬퍼하며 제 길을 간 오르파와 달리, 룻은 홀로 된 시모를 끝까지 봉양하고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곧 ‘갈증을 해소하다.’, ‘물을 주다.’로 추정되는 그의 이름 뜻처럼, 룻은 나오미에게 샘물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과거에는 모압이 이방 예언자 발라암까지 동원하며 이스라엘을 저주하였지만(민수 22-24장), 모압의 후예인 듯이 조상의 허물을 대신 갚기라도 하듯 이스라엘의 후손에게 휴식처가 된 것입니다.
다만 룻기의 작중 연대는 판관 시대이지만, 실제 저작은 바빌론 유배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많아지자 그들을 무조건 배척하지 말 것을 권고하려고 룻기가 쓰여진 것 같습니다. 이방인과의 혼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느헤 13,1-3 등), 그들에 대해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룻기를 통해 들려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모압 며느리 룻과 유다인 시모 나오미가 서로에게 보인 애정과 헌신은 당시의 금기를 깨뜨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렇게 룻기는 자칫 민족 배타주의로 흐르기 쉬웠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에 중용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룻 1,16). 룻은 이방 여인임에도 나오미가 가장 어려울 때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위기에 빠지면 누가 진짜 친구인지 알 수 있다는 속담처럼, 모든 걸 잃고 상심한 시모를 한결같이 보살핀 룻은 참으로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예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고, 구세주의 계보에도 이름을 올리는(마태 1,5) 영광을 입었습니다.
[2025년 6월 1일(다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수원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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